[비즈니스포스트] 쌍용자동차 매각이 끝내 무산되면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셈법이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그동안 이 회장은 쌍용자동차의 사업성이 확보돼야 자금 수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지원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지방선거,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등 여러 대외적 상황이 복잡하게 얽힐 수 있어 이 회장이 기존 입장을 바꿔 지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28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쌍용자동차의 청산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보다는 일단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쌍용자동차 직원은 4천여 명에 이르고 협력업체 직원만도 1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쌍용자동차가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면 관련 임직원들이 거리로 나앉게 돼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새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회장도 쌍용자동차가 청산되면 고용 등 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2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용문제를 고려하면 쌍용차를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동걸 회장과도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새 정부는 쌍용자동차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을 통한 공적자금 지원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회장이 쌍용자동차의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지원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던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기자간담회에서 “본(本)은 지속가능한 사업계획이고 말(末)은 정부와 채권단의 지원으로 본말이 전도돼서는 안된다”며 “돈 만으로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도 “산업은행은 과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사례를 경험하면서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정상화에 관한 섣부른 예단이 얼마나 많은 비효율과 위험을 야기하고 성장 정체를 낳았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쌍용자동차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였던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이 KDB산업은행의 대출을 희망했지만 이 회장은 사업계획에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며 자금지원에 선을 그었다.
새 정부와 이 회장이 쌍용자동차 지원과 관련해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끝내 부딪치게 된다면 이 회장의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KDB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자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쌍용자동차 지원을 둘러싼 갈등까지 더해진다면 이 회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있다.
그동안 KDB산업은행 수장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정권교체기에 물러나는 사례가 많았다.
이 때문에 이 회장도 잔여 임기가 1년가량 남았지만 쌍용자동차에 대한 지원불가 입장을 고수한 채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지금 당장 쌍용자동차의 청산이라는 카드를 원하는 쪽은 없기 때문에 여러 현안을 올려놓고 절충안을 찾으려는 시도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현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이 회장이 쌍용자동차와 관련해 일관되게 발언해왔던 내용에서 아직까지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