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어플리케이션 이미지.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가상화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시세 변동이나 투자 전망 때문이 아니다.
특정 국가나 정부에서 통제하기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가상화폐의 특성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갈등 양상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군사비 지원을 위해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기부 행렬이 이어지는 사례와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러시아 금융제재 불참 선언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2일 미국 타임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 및 우크라이나 군대를 지원하는 비정부단체(NGO)가 현재까지 모은 가상화폐 기부금 규모는 3380만 달러(약 407억 원)에 이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본격적으로 모금이 시작된 지 약 일주일만에 달성한 실적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의 침공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군사비를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공식 트위터 계정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로 기부를 받기 시작한다고 안내했다.
세계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개인 및 기업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NGO에 기부를 시작하며 군사 자금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타임에 따르면 NGO 가운데 하나인 컴백얼라이브는 이미 가상화폐 기부금을 통해 환전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시 보급할 수 있는 군사물품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기부금 이외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목적으로 한 가상화폐 투자 펀드 조성이나 기부를 목적으로 판매되는 전용 가상화폐 발행도 이어지고 있다.
가상화폐가 갖추고 있는 기술적 장점이 우크라이나 기부 행렬을 통해 뚜렷한 사례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는 특정 국가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환전도 필요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국가 사이의 거래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고 이체나 거래 규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져 자금이 어떻게 이동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로 모은 기부금을 올바르게 사용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ABC뉴스는 “기존의 국제 금융시스템을 활용했다면 지금과 같은 빠른 지원은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가상화폐 거래는 감시받거나 통제될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이처럼 가상화폐로 큰 수혜를 보고 있는 반면 러시아의 가상화폐 거래가 국제사회의 금융제재에서 벗어나 있어 오히려 러시아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CNBC 등 외국언론에 따르면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는 러시아 이용자들의 가상화폐 계좌를 동결해달라는 우크라이나 부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바이낸스는 CNBC를 통해 “가상화폐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금융거래의 자유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일방적으로 계좌를 동결하는 일은 가상화폐 존재 이유와 반대되는 일”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은행 계좌를 대상으로 자금 거래를 중단하는 금융제재에 속속들이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낸스가 금융제재에 불참하기로 선언하며 러시아와 다른 국가 사이 가상화폐를 주고받는 일은 자유롭게 이뤄지게 되는 만큼 금융제재의 효력이 다소 상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낸스는 금융제재의 주요 대상으로 꼽히는 일부 인물의 가상화폐 거래는 제한하겠다면서도 잘못이 없는 일반 이용자들의 거래를 막을 계획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쿠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도 CNBC를 통해 러시아 이용자의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적으로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ABC뉴스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가상화폐 거래소를 국제 금융제재 우회 통로로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가상화폐가 전쟁에 새로운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특정 국가나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가상화폐의 특징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되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이처럼 세계 각국 정부의 러시아 금융제재 시도를 일부 무력화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상화폐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시장에서 더욱 주목받으며 국제 금융시장 환경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ABC뉴스는 “러시아가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것 이외에는 가상화폐 거래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며 “현재까지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