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반도체(GPU) 및 CPU 전문기업 AMD가 350억 달러(약 42조 원)에 이르는 반도체 설계기업 자일링스 인수에 필요한 절차를 사실상 모두 마무리했다.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대규모 인수합병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 사례인 만큼 삼성전자에도 아직 기회가 열려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AMD는 10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자일링스 인수를 위해 필요한 모든 승인 절차를 밟았다”며 “거래를 위한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 14일자로 인수거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자일링스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FPGA 반도체 분야의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연결된 장치나 메모리에서 프로그램을 불러와 작업을 하는 다른 시스템반도체와 달리 FPGA는 반도체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때문에 연산 속도가 훨씬 빠르다.
주로 인공지능과 로봇, 데이터센터 등에 쓰이며 인공위성, 미사일 등 방산 분야에도 널리 활용된다.
AMD는 자일링스 인수를 통해 클라우드 서버와 엣지컴퓨팅 등 첨단 산업에서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두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고객 기반을 합쳐 시너지를 내겠다고 밝혔다.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쟁당국에서 AMD의 자일링스 인수합병 계획을 승인한 것은 상당히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수 규모가 350억 달러로 상당한 데다 AMD와 자일링스 모두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춘 시스템반도체 전문기업이기 때문이다.
중국 경쟁당국은 1월27일 인수 승인을 결정하면서 AMD와 자일링스가 고객사들에게 서로 다른 종류의 반도체를 끼워팔거나 이를 빌미로 고객사를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 일부 조건만을 내걸었다.
최근 엔비디아가 반도체 설계기업 ARM 인수를 시도하다 독과점을 우려한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인수계획을 완전히 철회한 것과 차이가 있다.
AMD의 자일링스 인수 성사가 삼성전자의 글로벌 반도체기업 대형 인수합병 시도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도 AMD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반도체시장에서 대규모 인수를 추진할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각국 경쟁당국이 반도체회사들의 외형 확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도 독점금지 규제를 뚫고 대형 반도체기업 인수합병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유력했다.
그러나 AMD가 자일링스 인수에 무리 없이 성공하면서 삼성전자도 인수합병에 더 적극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일링스는 이전부터 삼성전자의 인수합병 대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됐던 기업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가 자일링스와 같은 서버용 반도체나 인공지능 반도체, 자동차용 반도체 전문기업을 인수해 신산업 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힘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올해 초 IT전시회 CES2022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두고 인수합병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콘퍼런스콜에서도 삼성전자는 인수합병 등 외부 투자 가능성을 고려해 100조 원 안팎에 이르는 순현금을 배당 등에 활용하지 않고 유지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AMD의 자일링스 인수로 시스템반도체시장에서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삼성전자도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을 추진해 글로벌 대형 시스템반도체기업과 맞설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는 “AMD가 자일링스 인수를 계기로 서버용 반도체시장에서 라이벌인 인텔과 더 강력하게 맞설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