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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전 중앙아시아 3국 순방을 마치고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뒷편은 김기춘 비서실장.<뉴시스> |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낙마사태의 책임에서도 벗어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문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하면서 김기춘 책임론이 다시 거세게 일고 있다. 김 실장이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 고위공직자 추천과 검증의 총책임자인 탓이다.
김 실장은 지난해 8월 임명된 이후 여러 차례 사퇴요구에 시달렸지만 그때마다 박 대통령의 굳건한 신임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인적쇄신 요구가 높은 상황에서도 김 실장은 자리를 지켰다.
특히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낙마했을 때 정치권 안팎에서 인사책임자인 김 실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그를 유임시켰다. 김 실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입증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 상황이 다르다.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문턱도 가보지 못하고 연거푸 낙마한 것은 사상초유의 사태다. 이런 사태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부는 ‘무책임 정부’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박 대통령이 그 책임을 질 수 없다면 결국 김 실장일 수밖에 없다.
특히 7월30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두 번의 총리 후보자 낙마사태는 박 대통령의 인적쇄신 효과를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재보궐선거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다. 여권 내부에서도 김 실장 책임론이 무게있게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기춘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여권의 반응
김 실장은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을 주관하는 데다가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김 실장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특히 여당 내에서도 반발기류가 커지고 있다.
여당의 유력 당권주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2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쨌든 총리 후보자가 두 번째 낙마한 것에 대해서 그 담당한 분은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말했다. 또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은 “문 후보자도 박근혜정부 인사시스템의 피해자”라며 “인사위원장인 김 실장의 책임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의 공세는 거세다.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한 브리핑에서 “인사추천 및 검증의 실무책임자인 김 실장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시급하다는 게 바로 국민의 뜻”이라며 “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으로 내정돼 있던 박지원 의원도 “김기춘 실장이 물러나고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맡는 현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새누리당 내부에서 김 실장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다.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은 “문 후보도 교회에서 있던 일은 제보로 알려졌다”며 “청와대 비서실장이 검증하는 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대표적 친박계 인사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야당이 총리지명자 낙마 책임을 물어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처음 안대희 총리 후보자의 낙마 당시 김 실장의 책임론이 불거졌을 때 김 실장을 옹호하던 반응과 비교해 보면 훨씬 강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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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청와대에서 열린 제23회 국무회의에 참석했다.<뉴시스> |
◆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청와대의 눈높이
청와대 인사위원회는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인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신설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겸하며 밑에 국정기획 수석, 민정수석, 정무수석, 경제수석, 홍보수석, 미래전략수석 등을 인사위원으로 두고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대통령 또는 제3자가 총리후보를 추천하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이들의 재산 상태나 범죄경력 등 기본적 정보를 조회한다. 이 과정에서 3~5명으로 압축된다. 이들을 대상으로 다시 질의응답을 통한 검증을 실시한다. 병역, 전과, 납세 등 200여 가지를 질문한 후 본인의 동의 아래 예금, 저축과 같은 금융정보 조회를 실시한다.
여기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하면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이들을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보고 한다. 인사위원회에서 마지막 검토를 거쳐 최종 후보자 1~2명을 정한다.
이런 검증절차를 통하면서도 후보자들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해 청와대의 허술한 인사검증 시스템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연이은 총리후보 낙마사태가 청와대의 인사검증 눈높이가 국민정서와 크게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논란이 될 사안이 나오더라도 팔이 안으로 굽거나 과거에 관행이라는 점 때문에 지나쳤다가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김 실장을 비롯해 법조인 출신들이 주도적으로 검증을 진행하면서 위법만 아니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청와대 인사위원회는 변호사 시절의 수입에 대해 질문했고 안 후보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로서 관행 수준의 수입이며 이미 4억7천만 원을 기부했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곧 인사검증 과정에서 안 후보자의 전관예우 사실을 알면서도 김 실장을 비롯해 청와대에서 큰 문제가 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문창극 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 후보자가 중앙일보에서 재직할 당시 썼던 역사인식 관련 칼럼 등이 논란에 휩싸였지만 청와대는 이에 대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과거사 문제에 민감한 국민정서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비판인 것이다.
◆ 비선 라인의 인사 추천과 형식적 검증
일부에서 장관급 이상 인사의 경우 인사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내놓는다. 인사위원회는 주로 공기업 수장이나 행정부 차관급 인사 추천에만 관여한다는 것이다.
장관급 이상의 고위직의 경우 인사위원회와 같은 공식적 경로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대통령 최측근 등이 직접 특정인사를 지목해주는 비공식적 경로를 통해 결정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추천된 인사를 놓고 인사위원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하기는 애초부터 어렵다는 것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인사검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자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비선라인'에서 추천했다는 말이 청와대나 새누리당 등 여권 내부에서 나왔다. 이 경우 인사위원회의 검증시스템도 철저하게 적용될 수 없어 추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또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을 더 무겁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낙마한 총리 후보자들이 어떤 형태든 김기춘 실장과 연결되어 있는 점으로 볼 때 김 실장이 추천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러다 보니 인사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