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의 등기이사는 아니다. 이번 사고는 당장 2주 뒤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적용된다고 해도 원칙적으로 처벌대상자는 회사의 대표이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건설현장에서 근로자가 숨지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입는 근로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재해가 일어났을 때 사업주와 대표이사 등 최고경영자가 규정된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하지만 정 회장은 HDC그룹 오너 경영인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상근 회장이라는 점에서 모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HDC현대산업개발 지분을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주회사 HDC를 통해 HDC현대산업개발을 지배하고 있다. HDC는 HDC현대산업개발 지분 40%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정 회장은 HDC 지분 33.68%를 들고 있다.
▲ 11일 외벽 일부가 무너져내린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연합뉴스>
광주 화정아이파크아파트 공사현장 외벽 붕괴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건설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작업 진행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고 얼지 않도록 보호하는 양생작업이 더 까다롭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오래 걸려 공사기간을 단축하라는 윗선의 지시에 따르려면 이런 기본적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건설사는 공사기간이 늘어나면 추가 인건비와 금융비용, 공사현장 자재나 장비보관 등 간접비 부담이 커지게 된다.
게다가 이번 사고 발생 현장과 같은 아파트 신축공사는 입주 일정이 미뤄지면 입주지체에 따른 보상금까지 물어줘야 할 수 있다.
시공사의 작업 관련 안전수칙이나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건설공사 현장에 많은 하도급업체가 발주처와 간접비 부담 관련 분쟁 등을 겪는 만큼 애초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작업을 강행하는 일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은 수익성 문제로 기본적 안전수칙에 구멍이 뚫린다는 소리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런 추측들을 놓고 보도자료를 통해 “화정아이파크는 예정된 일정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던 현장으로 무리하게 단축할 필요가 없었다”며 “일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다만 “있을 수 없는 사고”라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죄했다.
▲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0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책임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학동 참사는 하도급업체의 철거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지만 화정아이파크아파트 붕괴사고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직접 관리감독하는 현장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그룹 경영에 있어서도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회장은 5일부터 7일 각 계열사 대표들과 함께한 미래전략회의에서 2022년 종합부동산그룹으로 도약을 목표로 부동산개발(디벨로퍼)분야 사업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놓았다.
하지만 대형 붕괴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설업은 특히 안전과 품질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데 HDC현대산업개발은 부실 시공사의 오명을 씻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온라인상의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짓고 있는 다른 아파트들의 안전관리부분에 관해서 불안감을 드러내는 반응들이 나온다.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12일 성명을 통해 “이번 사고는 생명과 안전보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이윤 창출 욕심과 관리감독을 책임져야 할 관계기관의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제2의 학동 참사”라며 “HDC현대산업개발을 광주에서 즉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시는 이날 오전 긴급현장대책회의를 통해 광주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든 HDC현대산업개발 현장에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