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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제윤 금융위원장(왼쪽)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
'한 지붕 두 가족'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또다시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수현 금감원장이 KB금융지주에 가벼운 처벌을 내린 것을 두고 양쪽 의견이 갈린 것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법을 개정해 금감원의 권한을 대폭 줄이려 하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감독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이르면 9월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해치거나 금융소비자 피해를 야기하는 사안에 대해 즉각 금융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지금까지 다소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 ‘조사 → 당사자에게 처벌수준 사전통보 → 당사자 소명 청취 → 제재심의위원회 → 금융위원회 보고'의 절차를 따랐다.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전 사전통보를 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소명준비를 할 수 있도록 사전고지하는 성격이다.
현행 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제재심의위원회 10일 이전에 당사자들에게 사전통지를 해야 한다. 다만 관행적으로 16일의 기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금융감독원은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조사 후 바로 금융위원회에 보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은 또 수사대상과 접촉하는 절차를 모두 금융위가 직접 수행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당사자에게 처벌수준을 사전고지하는 것과 당사자의 소명을 듣고 검토하는 것도 금융위의 업무로 넘어가게 된다. 사실상 금융감독원에 남은 기능은 감독기능 뿐이다.
개정안은 또 제재 예정 내용에 대한 비밀준수 의무도 명시했다. 징계 예정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할 경우 징역형에 처해진다. 지금처럼 징계내용을 사전통보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정안은 금감원과도 충분히 논의한 건으로 정책대응 속도를 보다 높일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감원은 “금융위가 금감원의 검사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금융위가 개정안 입법 예고한 배경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해 중징계를, KB금융지주에 경징계인 ‘기관경고’를 사전 통보했다. 늘 지켜온 절차였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이에 대해 “우리 허락을 맡지도 않고 징계를 미리 알려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금융위원회는 처벌수위를 문제삼았다. KB금융지주는 금융지주회사법 특례조항으로 인해 기관경고를 받더라도 출자자 자격 제한 등의 제재 효과가 미치지 않는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원이 실익이 없는 처벌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때 나타난 갈등에 따라 금융위가 금감원의 권한을 회수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동양사태 이후 연이어 금융사고가 터지자 “검사를 상시화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다"며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국민은행이 감사대상에 오르자 경영 수뇌부의 계좌까지 들여다보며 처벌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KB사태는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중요한 사례 중 하나”라며 “금융감독원의 조사결과를 두고 보겠다”고 밝혔다. 징계수위을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최수현 금감원장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자 신 위원장 자신이 직접 나선 것이라고 업계는 분석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제재 관련 권한을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융위는 2010년 금융감독원장이 가진 금융기관 제재권한을 금융위로 가져오기 위해 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발끈하고 나섰고 결국 처리가 무산됐다.
그 이듬해 두 조직은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을 둘러싸고 대립했다. 금융위는 금융소비자보호원장의 임명권과 예산 승인권한을 주장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반발하며 소란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같은 업무를 금융위와 금감원 두 조직이 분담해 처리하는 구조 상 주도권 다툼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는 “두 조직을 과거 금융감독위원회 형태로 통합해 금융 감독기능을 전담하게 하고, 금융 정책기능은 기획재정부로 이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