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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오너없어도 잘 나가는 이유

임수정 기자 imcrystal@businesspost.co.kr 2014-06-18 15: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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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그룹이 오너없어도 잘 나가는 이유  
▲ 왼쪽부터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SK이노베이션 회장), 하성민 전략위원회 위원장(SK텔레콤 사장), 구자영 글로벌성장위원회 위원장(SK이노베이션 부회장), 정철길 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SK씨앤씨 사장), 김재열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SK주식회사 부회장)

최태원 회장이 횡령 혐의로 4년 형을 선고 받고 현재 1년5개월 째 복역중이다. SK그룹은 오너공백에도 불구하고 경영실적이 좋다. 계열사 CEO들의 모임인 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가 최 회장을 대신해 SK그룹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 시스템이 있다면 SK그룹에 수펙스가 있다. ‘수펙스’(SUPEX)는 ‘Super’와 ‘Excellent'의 합성어로 SK그룹 특유의 경영방침을 일컫는다.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1% 가능성 밖에 없는 것을 99%의 노력을 더해 100%까지 가도록 하는 것이 수펙스 추구법”이라고 말했다.


수펙스는 SK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들이 모인 그룹 내 최고의사결정기구다.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의장을 맡고 있으며 전략, 글로벌성장, 커뮤니케이션, 윤리경영, 인재육성, 동반성장 등 6개 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수펙스는 지난해 1월 최 회장이 법정 구속되기 직전 ‘따로 또 같이 3.0’ 경영방침을 내세웠다. 이 방침은 2002년 최초 도입된 이후 진화를 거듭했다. 따로 또 같이 3.0은 계열사별 자율책임경영을 전제로 하며 그룹 차원에서 글로벌 공동성장을 추구한다.


수펙스는 올해 2월 최 회장의 4년 실형이 확정되면서 그룹 내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최 회장은 실형선고를 받은 후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회장직함도 내놓았다. 자연스럽게 수펙스에 더욱 힘이 실렸다. 또 지주사 SK주식회사가 담당하던 구조조정 업무도 수펙스로 이관됐다.


수펙스가 최 회장 공백상황에서 그룹 현안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 오너공백에도 빛나는 전문경영인 집단


수펙스는 오너공백이라는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올 1분기 견조한 실적을 만들어 냈다.


올 1분기 SK C&C는 역대 1분기 중 사상최대의 영업이익을 냈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에만 1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분기에도 실적호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전분기 적자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SK텔레콤은 영업정지 등의 여파로 영업이익이 다소 줄긴 했지만 여전히 시장점유율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 회장 없이도 SK그룹은 잘 돌아간다는 말이 나올만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1월부터 3.0 체제를 도입했고, 그 달 31일 최 회장이 구속됐다”면서 “오너 형제가 나란히 실형을 받았지만 미리 전문 경영인체제를 구축한 덕분에 큰 혼란을 피했다”고 말했다.


수펙스의 선전은 CJ그룹이 이재현 회장의 부재로 경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CJ그룹은 이 회장이 구속되자 지난해 7월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하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CJ그룹의 그룹경영위원회는 SK그룹의 수펙스와 마찬가지로 그룹 내 중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CJ그룹의 그룹경영위원회는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면서 수천억 원대의 신규투자, 주요 계열사의 인수합병 계획 등이 무산됐다. 글로벌 사업확장 등 공격경영을 내세우고 있는 수펙스와 대조적이다.


CJ그룹 내부사정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가에서 제일제당만 가지고 독립한 이 회장은 현재의 CJ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 대부분 과정을 혼자 주도하다시피 했다”며 “그룹 경영을 혼자 이끌다보니 오너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펙스의 선전이 한국 오너경영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우리나라 재벌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오너 일가가 경영과정에서 개인적 이익을 취하다 타인에게 불이익을 끼치는 폐해가 컸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너경영 체제의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다. 수펙스의 성공이 이런 논의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기대 섞인 말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기업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여론이 커지면서 대기업 대주주들도 경영권의 대물림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며 “SK그룹에서 전문경영인 집단지도체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린다면 재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이 오너없어도 잘 나가는 이유  
▲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 수펙스는 왜 최태원의 부정행위를 막지 못했나


수펙스가 이끄는 SK그룹의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펙스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수펙스도 결국 전문경영인체제의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시각이다.


수펙스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최 회장이 뿌린 씨를 거두는 데 불과하다는 평도 나온다.


SK그룹은 최근 중국 최대 국영석유기업 시노펙과 합작공장 가동을 시작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석유기업 사빅과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업들은 SK그룹이 단독투자에 따른 위험 부담을 줄이고자 각 분야를 대표하는 해외기업과 협력을 구축하는 글로벌 파트너링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사람은 수감 중인 최 회장이었다.


최 회장은 SK그룹이 사빅과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할 수 없었지만 자필서신을 보내 옥중경영을 펼쳤다. 그는 서신을 통해 “3년 전 저희들이 교환했던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었다”며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했다.


SK그룹은 최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까지 실형을 선고받자 “회장 형제의 경영공백 장기화로 본인들이 직접 진두지휘 했던 대규모 신규사업과 글로벌사업의 돌이킬 수 없는 차질이 우려된다”며 “최 회장이 그 동안 중점적으로 벌여왔던 사회적 기업 정착 노력, 글로벌 국격 제고 활동 등도 이번 선고로 중단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깝다”고 밝혔다.


SK그룹이 오너를 잃고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다.  SK그룹 내에서 수펙스가 최 회장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해 온 탓에 최 회장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 배경에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장남 최태원 회장 체제 안착을 위해 도입한 수펙스제도의 태생적 한계가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5년 선경운영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집단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했다. 선경운영위원회는 1998년 수펙스추구협의회로 개편됐는데 당시 최종현 선대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 최태원 회장 보좌를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수펙스는 전문경영인체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면서도 경영보다 오너 보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수펙스가 2004년 분식회계에 이어 이번에 입증된 횡령까지 최 회장이 저지른 두 번의 굵직한 부정행위를 막아내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다.


4년 형을 선고 받은 최 회장은 현재까지 1년5개월 째 복역중이다. 그가 SK그룹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2년7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전문경영인체제의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오너경영에 일침을 놓을 수 있는 시간도 앞으로 2년7개월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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