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과 관련해 중복노선에 관한 경쟁제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긴장하게 됐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 통합 뒤 사실상 항공정비물량을 독차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항공정비사업(MRO)을 떼내야 한다는 의견도 항공업계에서 나오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심사에서 이 방안을 들여다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겸 한진그룹 회장.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놓고 최근 필수신고대상 일부 국가에서 두 회사 사이 중복노선에 관해 경쟁제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공정위가 기업결합심사에서 강력한 시정조치와 함께 조건부승인을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애초 시장에서는 공정위가 무조건승인이 아닌 조건부승인을 내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는데 외부에서 두 회사의 합병과 관련해 경쟁제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명분도 생겼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에 속도를 내달라고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등 지켜보는 눈이 많아 공정위로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기가 쉽지 않았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 장기화에 대한 설명자료’에 따르면 주요 외국 경쟁당국의 심사는 아직 많이 진행되지는 않았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두 회사의 중복노선과 관련해 경쟁제한 우려가 있다며 무조건승인은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대한민국,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터키 등 필수적으로 기업결합신고를 해야 하는 9개 경쟁당국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터키와 태국 등 2곳에서만 승인을 받았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가벼운 시정조치를 내리는 데 부담을 안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1999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때 공정위는 ‘트럭 가격 인상률을 3년 동안 제한한다’는 조건만 걸고 기업결합을 승인했는데 이때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자동차시장을 사실상 독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는 시선이 자동차업계에 적지 않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의 우아한형제 인수를 승인하면서는 요기요를 운영하는 한국법인인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의 지분을 100% 매각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정위가 외국 경쟁당국의 의견을 명분 삼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서 가격 인상 금지나 핵심노선 매각 등 강력한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시정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데 특히 항공정비사업부문 매각이 기업결합심사에서 떠오르면 부담이 작지 않다.
본래 항공정비사업은 대항항공에게 알짜사업으로 꼽힌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전인 2019년을 기준으로 항공정비사업에서 매출 7404억 원, 영업이익 384억 원을 거뒀다. 대한항공 전체 매출에서는 5.6%, 전체 영업이익에서는 14.8%에 각각 이르는 규모다.
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통합하게 되면 당장 자체 항공기 보유대수가 늘어나는 데다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의 항공정비 수요도 확보할 수 있게 돼 항공정비사업 규모도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항공정비사업부는 자체 항공기 정비능력이 없는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해 항공기 수리 등 정비사업도 하고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항공정비사업부문 분리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올해 6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인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열린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바람직한 통합방향’ 토론회에서 대표 발제를 맡은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두 회사의 통합과 관련한 4가지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로 대한항공의 항공정비사업부문 분리를 꼽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공정위 기업결합심사 등과 관련해 성실히 협조한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경쟁당국의 자료제출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것 외에는 따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