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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현대그룹인가? ‘현씨그룹’인가?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 자구책을 발표하면서 현대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아산, 현대로지스틱스를 중심으로 세우겠다고 했다.
현 회장에게 남은 회사는 현씨 집안의 색깔이 강하다. 현대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의 모태는 현씨 집안의 가족기업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대부분 현씨 집안이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최대주주는 현 회장의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그나마 현대아산이 현대가문 정씨의 색깔이 남아있는 회사다. 그러나 현대아산은 대북사업이 중단된 상태라 그 누구도 가져가기를 꺼려한다. 현대로지스틱스의 경우 현 회장은 애초 기업공개를 추진했으나 지분 매각으로 방향을 선회해 경영권만 유지한 채 지분의 대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현대그룹의 적통이라고 평가받는 현대건설에 이어 이번에 유동성 위기를 넘기 위해 현대증권마저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이제 정씨 일가의 색깔은 흐려졌다. 오직 ‘현대’라는 이름만 남아있다. 이는 현씨의 현대그룹이 거의 자리를 잡았음을 의미한다.
◆ 현정은 회장 아버지의 땀이 녹아든 현대상선
2014년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포함한 현 회장 일가에게 의미있는 해다. 올해는 부친인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이 신한해운을 설립한지 50년이 되는 해다.
신한해운과 현대상선은 현씨 일가와 정씨 일가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했다. 현대상선은 현대가의 회사다. 그러나 현대상선을 성장시킨 것은 현씨 일가였다. 현대상선이 현씨 가문의 가족기업 같았던 회사와 합병돼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 회사가 바로 현영원 회장이 만들었던 신한해운이다.
현씨 일가는 일제시기 호남의 대표적인 지주 집안이자 많은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 집안이다. 현정은 회장의 고조부인 현기봉은 1914년 신흥제철소를 설립했고 광주농공은행 이사, 일청생명보험회사 상의원 등 다수의 기업경영에 관여했다. 조부 현준호도 1920년 호남은행을 설립해 은행장을 역임했다. 호남은행은 조흥은행의 전신이며 신한은행에 합병됐다.
현영원 회장은 현준호의 셋째 아들로서 6·25전쟁으로 북한군에 의해 아버지와 큰 형, 작은 형을 잃은 뒤 하루아침에 장손이 됐다. 현영원 회장은 이후 1964년 물려받은 재산으로 신한해운을 설립했다. 신한해운은 현영원 회장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사돈의 연을 맺게 해준 회사다. 신한해운은 현대그룹이 해운업에 진출하는 데 발판도 마련해줬다.
현영원 회장은 1972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중공업의 울산조선소 착공 직후 홍콩 선주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선주들을 설득해 현대중공업이 2척의 유조선을 수주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사돈의 연을 맺고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회장을 결혼시켰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76년 아세아상선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현영원 회장이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후 1984년 신한해운은 신정부의 해운산업 합리화 조치로 현대상선에 통합됐다.
현영원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배려로 현대상선의 사장으로 취임해 1995년까지 대표이사 회장을 맡았다. 현영원 회장은 사위 정몽헌 회장의 경영을 도왔다. 현영원 회장은 2001년 현대상선 회장으로 복귀해 현대그룹의 경영안정을 도모했다.
이렇게 현대상선을 키우는 데 기여했던 것은 현씨 일가였다. 현대상선을 매각한다는 것은 현씨 가문의 전통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현씨 집안이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라며 “현 회장에게 반드시 지켜내야 할 회사”라고 말했다.
2003년 정몽헌 회장 별세 뒤 현대그룹이 현정은 회장 체제로 전환되자 현원영 회장은 현대그룹을 되찾으려는 정씨의 공격에 맞서 현정은 회장을 도와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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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회장의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
◆ 현정은 회장 어머니가 최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씨 일가의 가족기업은 아니지만 현씨 집안이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현씨 집안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골고루 지니고 있다. 현씨 집안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8.8%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 주주는 현정은 회장의 어머니인 김문희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6.4%를, 현정은 회장은 1.2%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김문희 이사장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누나다.
현씨 집안의 나머지 지분은 현정은 회장의 여동생인 현승혜씨와 현지선씨가 나눠 소유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주력회사이자 현씨 일가의 가족기업인 현대상선의 지분을 23.88%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셈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정상영 회장의 KCC가 경영권을 위협할 때 경영권 방어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6년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상선 및 현대증권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 증권사 등이 현대상선 주식을 사주고 대신 현대엘리베이터가 이 주식이 하락할 경우 손실을 보전해 주기로 계약한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영업이익 700억 원 규모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보다 6배가 넘는 파생상품 거래 때문에 자본잠식 위기에 몰려 있다. 파생상품 만기 때마다 현금정산에 들어가면서 지난해부터 수백억 원대 자금을 지출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이 사슬에서 풀려나려면 2천억 원대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그룹이 계열사를 매각시키면서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다시 정씨 회장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현정은 회장은 정몽헌 회장과 결혼해 장녀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차녀 정영이 현대상선 대리, 장남 정영선 씨 등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두 딸이 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녀 정지이 전무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학위를 딴 뒤 외국계 광고회사에 근무하던 중 2004년 현대상선에 경력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정 전무는 2005년 대리로 승진했고 얼마 후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입사 2년 만인 2006년 현대유엔아이 전무가 됐다. 업계 인사들은 정 전무에 대해 현대 가문의 전통적 기질에 어머니 현 회장의 꼼꼼한 성미를 닮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 전무는 현대가의 집안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차녀 정영이 대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2012년 6월 언니 정지이 전무가 일하는 현대유엔아이로 입사했다. 현재는 현대상선에서 재무·회계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동아들인 정영선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현재 미국 유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영선씨는 현대가 직계 3세 중 나이 서열로 정기선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 바로 아래의 인물이다. 정영선 씨 역시 학업을 마치는 대로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의 자산승계율은 대기업 평균치에서 많이 떨어진다. 현대그룹의 자산승계율은 6.7%로 집계됐다. 자산승계율은 경영권이 있는 총수와 부인, 직계 자녀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족 전체 자산 가운데 자녀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비율이다.
또 세 자녀가 여러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주력 계열사 지분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과연 경영권 승계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세 자녀들은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현 회장과 어머니 김문희씨에 비하면 미비한 수준이다.
정지이 전무는 현대유엔아이 지분 7.89%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글로벌의 지분도 8% 정도 보유하고 있다. 정영이 대리와 정영선씨도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현대아산 등의 계열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지만 지분율은 1%대 미만이다.
재계에서 첫째 딸인 정지이 전무가 현 회장의 후계자로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지만 장남 상속을 우선시하는 현대가 가풍을 감안할 때 정영선씨가 후계자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정은 회장의 어머니 김문희씨가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인 점을 고려할 때 현씨 가문에서 경영권을 이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