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자만이 살아남는 '속자생존' 시대를 맞아 디지털혁신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최근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권 행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통찰력과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나아가는 호시우행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불과 반년 사이 경영전략 실행 속도를 바라보는 권 행장의 시각이 확 달라진 셈이다.
호랑이 눈으로 소처럼 한 걸음씩 나아가기에는 급변하는 디지털 전환흐름에 발맞추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하반기 디지털전략을 '속도'에 집중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카카오뱅크 상장을 계기로 은행이 디지털 기반으로 변화해야할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8월 초 상장을 앞두고 있는 카카오뱅크가 은행을 넘어 금융지주 시가총액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뱅크는 공모가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8조5289억 원에 이르며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카카오뱅크는 순이익 규모에서 금융지주는커녕 시중은행들보다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디지털 경쟁력이 차별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이 은행업의 성장성을 놓고 디지털화를 어느정도 중시하는지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셈이다.
카카오뱅크 상장을 통해 디지털 뱅크의 가능성이 부각된 가운데 시중은행이 아직 카카오뱅크를 따라잡을 시간적 여유는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뱅크는 폭발적 대출 증가를 가정해도 5년 안에 대형 시중은행 규모의 대출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앞으로 5년 동안 신용대출은 연평균 16.3%, 주택담보대출은 연평균 75.6% 증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카오뱅크가 대출 점유율을 키우는 동안 시중은행이 디지털 경쟁력을 갖춘다면 반전의 기회는 남아있을 수 있다.
권 행장이 하반기 우리은행 디지털전략에 속도를 앞세운 이유다.
우리은행은 23일 비대면으로 하반기 경영전략 회의를 열고 디지털혁신 가속화를 통해 디지털뱅크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마이데이터, 대환대출 플랫폼 등 디지털 신사업 조기 선점 △자체 플랫폼 경쟁력 강화 △동종 및 이종산업과 제휴·연계를 통한 고객 접점 확장 등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권 행장은 하반기 들어 전방위적으로 디지털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4일 영업점 방문이 필요없는 모바일 전용 주택담보대출을 선보인 데 이어 6일 비대면 자산관리 상담서비스도 출시했다.
디지털 경쟁력을 외부에서도 확보하기 위해 빅테크와 제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6일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션과 협업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입점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상품을 선보였다.
권 행장은 하반기 조직개편도 디지털 전환에 중점을 둬 실시했다.
비대면 선호고객 전담관리를 위한 ‘원(WON)컨시어지영업부’와 비대면 자산관리상담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디지털PB팀’, ‘비대면PB사업팀’을 신설했다.
권 행장은 보수적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은행권에서 유연한 사고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디지털 전환에서도 외부 성공 노하우를 주저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 초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이사를 상반기 경영전략회의에 강연자로 초빙해 디지털 노하우를 듣기도 했다. 금융권에서 경쟁사 CEO를 내부 행사에 초청한 것은 권 행장이 처음이다.
최근 우리은행은 메타버스를 통해 임직원 사이 소통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권 행장은 '전광석화'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권광석 행장의 이름과 비슷한 데서 착안한 듯 보이는데 부싯돌이 부딪히면서 번쩍이는 불빛처럼 빠른 속도를 뜻하는 점도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다.
권 행장이 추진해 온 디지털 전환의 성과도 점차 나타나고 있다.
우리은행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비대상품 가입 고객 수 167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2019년 말보다 21.2%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 가운데 비대면 비중은 28.8%에서 67.3%로, 적립식예금 가운데 비대면 비중은 80.7%에서 89.2%로, 펀드 가운데 비대면 비중은 61.6%에서 83.8%로 높아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종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