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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의 아름다운 낙선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2014-06-04 20: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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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겸의 아름다운 낙선  
▲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 <뉴시스>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의 도전이 또 실패로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텃밭인 대구에서 야당의 이름을 걸고 철옹성에 맨몸으로 도전했지만 쓴잔을 마셨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아름다운 실패’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하다. 한국사회에 여전히 골이 깊은 지역감정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은 그에게 큰 정치적 자산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이미 그런 도전과 실패에 대해 ‘보상’해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다.


4일 열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결과 김 후보는 40.3%의 득표율을 기록해 56.0%를 얻은 권영진 새누리당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두 후보의 득표율 차는 15.7%포인트고 표차는 16만2284표이다. 김 후보는 2년 전 19대 총선에서 40.42%를 얻었다. 이번엔 그때보다 0.12%포인트 낮다.


개표가 30% 진행된 4일 오후 11시경 권 후보가 약 20%포인트 가량 앞서며 당선이 확실시 되는 것으로 나오자 김 후보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김 후보는 보도자료를 통해 “시민 여러분의 분에 넘치는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앞으로도 대구시민들과 언제나 함께하는 김부겸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선에 성공한 권 후보에 대해선 “권영진 후보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앞으로 좋은 시장이 돼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강렬한 요구에 잘 응답하는 행정을 펼쳐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 후보는 비록 이번에도 대구에서 패배했지만 보수성향이 강한 대구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 사상 최고 득표율인 40%대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정가에선 김 후보가 대구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새누리당의 텃밭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선거판을 흔들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 아름다운 패배로 끝난 두 번째 도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히어로는 김부겸 후보가 될 것이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공보단장이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지난 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 단장은 “김부겸 후보 유세 당시 젊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리를 가득 채운 사진이 있다”며 “지난번에 김부겸 후보가 40%를 얻었는데 이번엔 그 이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지난 3월24일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민주당 후보로 등록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서 당의 인기가 여전히 낮고 선거자금이나 조직도 없으며 승산도 밝지 않다”라며 “그렇지만 대구의 변화를 이끌어달라는 시민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출마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가 대구에서 출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후보는 2년 전 열린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갑 후보로 출마했다. 김 후보는 당시 이한구 새누리당 후보와 대결을 벌였지만 지역감정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당시 그가 얻은 득표율은 40.42%였다.


김 후보는 “대한민국에게 ‘통일’이 대박이지만 대구에게 ‘야당시장’이 대박”이라며 대구가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그동안 대구는 새누리당의 일당독재 속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경제침체라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여야의 협조를 모두 받을 수 있는 야당시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내걸며 해묵은 지역감정을 타파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당색도 버렸다. 대신 유권자들의 신뢰를 쌓는데 주력했다. 대구에 박정희 대통령 컨벤션센터를 짓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후보는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지어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하며 영호남의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후보는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공격하며 선거를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등 막판까지 선거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김 후보는 새누리당이 가덕도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남부권신공항과 관련해 “부산만을 위해 신공항을 건설하면 안 될 것”이라며 “신공항 추진을 위해 남부권 8개 시도가 모두 참여하는 남부광역경제권추진협의회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의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주효했다. 지난달 18일 17.9%포인트(매일신문)에 달했던 권영진 후보와 격차는 지난달 30일 11.9%포인트(영남일보)까지 줄어들었다. 무선전화 조사의 경우 53.5%의 지지율을 얻어 권 후보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김 후보는 이번에도 선거의 판세를 뒤집는데 실패했다. 김 후보는 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영웅의 탄생을 꿈꿨지만 야당후보로서 두 번 연속 4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 김부겸이 뒤이어 밟는 노무현의 길


“김부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사람이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16일 대구를 찾아 한 말이다. 문 의원은 “김 후보가 수도권에서 계속 국회의원을 할 수 있었음에도 기득권을 다 버리고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서 낙선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계에서 김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길을 따르는 정치인이라고 불린다. 김 후보는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며 2012년 19대 총선 때부터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도전을 이어왔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시장경선과 총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부산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탄생시킨 민자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문정수 민자당 후보에게 맞서 끝까지 선전했지만 37%의 지지율을 끌어내는 데 그치며 지역감정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열린 16대 총선에서 지역구였던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이때도 그는 “지역주의의 벽을 넘겠다”고 선언했다.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부산 북강서을에서 출마해 허태열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었다. 그러나 지역주의의 벽은 높았다. 노 전 대통령은 35.69%의 득표율에 그치며 두 번째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노 전 대통령의 두 번의 도전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가 얻은 정치적 자산은 대단히 컸다. 낙선 후 노 전 대통령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고 이들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이라는 팬클럽을 만들었다.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김 후보 역시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김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기 전인 2월28일 페이스북에는 ‘김부겸의 파란우체통’이란 팬 페이지가 개설됐다. 김부겸의 파란우체통은 김 후보의 시장출마를 바라는 시민이 자발적으로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다. 페이지 개설 후 한 달 만에 ‘좋아요’ 수가 2400번을 넘었고 현재 3000번에 이른다.


비록 김 후보의 2년 만의 재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그의 도전은 앞으로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부겸의 아름다운 낙선  
▲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가 지난 5월 27일 딸인 배우 윤세인(27, 본명 김지수)씨와 함께 선거 유세에 나섰다. <뉴시스>

◆ 운동권 출신 한나라당 의원


김부겸 후보는 야권 내에 얼마없는 대구경북 출신 정치인이다. 김 후보는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 보수당의 전통적 텃밭인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김 후보는 대구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김 후보는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유신반대 시위로 보냈다. 김 후보는 1977년과 1978년 각각 유신반대 시위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돼 제적당했다.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복학 후 다시 학생운동을 했다.


당시 김 후보는 복학생 대표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에 모인 1만 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을 했는데 이때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 후보는 제적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1987년에야 졸업했다.


김 후보는 1988년 한겨레민주당에 입당한 뒤 13대 총선 당시 서울 동작구 갑에서 출마해 3.25%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1991년 민주당에 입당한 후 1996년 15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김 후보는 1997년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이후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경기도 군포시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 후보는 군포시에서 16대부터 18대 총선까지 3선을 지냈다.


김 후보는 16대 총선에서 유선호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초선에 성공했다. 당시 두 후보의 득표차는 불과 260표차밖에 나지 않았다.


김 후보는 당선된 이후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2000년 8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불법 선거연락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당원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김 후보는 2001년 8월 열린 1심 재판에서 벌금 250만 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잃을 위기에 몰렸지만 2003년 3월 열린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벌금액이 80만 원으로 줄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재판부는 “김 의원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 야당으로 돌아와 야당 불모지 대구로


김 후보는 한나라당 개혁을 놓고 갈등을 벌이다 2003년 7월 개혁파 의원 4명과 함께 탈당했다. 정계에선 김 후보와 네 명의 전 한나라당 의원들을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렀다. 김 후보는 김근태 전 국회의원을 원내대표로 하는 국민참여통합신당에 입당했다. 통합신당은 같은해 11월 열린우리당으로 새로 창당했다.


김 후보는 2004년 열린 17대 총선에서 49.56%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다. 김 후보는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전당대회합동연설에서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경북을 공격하기 위해 나를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2007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 한나라당에서 나온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주축으로 출범한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과 합당한 뒤 2008년 2월 민주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으로 출범했다. 김 후보는 같은해 5월 열린 18대 총선에서 50.82%로 당선하며 3선에 성공했다.


김 후보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영남권을 공략하겠다며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구는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공략하지 못한 철옹성이다. 18대 총선 당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무소속 후보로 대구 수성을에 출마했으나 29.6%의 득표율에 그치며 낙선했다.


김 후보 역시 대구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40.42%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해 정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김 후보는 낙선 후 “대구에 와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며 “대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 여야의 경쟁구도를 만들어 대구를 살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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