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기업은행의 노조추천이사를 놓고 노사갈등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기업은행 노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만큼 윤 행장이 노사갈등을 봉합하는 데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12일 기업은행 노조에 따르면 금융위 및 민주당 측에서 기업은행 노조추천이사제 도입과 관련해 뚜렷한 답변을 내놓을 때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기업은행 사외이사 임명 권한을 들고 있는 금융위가 최근
윤종원 행장이 제청한 후보군 가운데 노조 측에서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제외하고 임명한 데 따른 것이다.
윤 행장은 노조 요구를 받아들여 노조추천 사외이사 후보를 포함시켰는데 금융위가 이 후보의 적격성을 이유로 들어 임명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에 반발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에서 추천하는 사외이사 후보를 이사회에 포함하는 방안은 윤 행장이 지난해 초 기업은행장에 오른 뒤 합의한 노사 공동선언문에 포함되어 있었다.
‘은행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유관기관과 적극 협의하여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노사 공동선언문 합의 때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이인영 장관이 배석하고 있어 여당도 합의한 사항이라 보고 있다”며 “금융위의 임명 거부에 강력히 항의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노사 공동선언문은 노조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윤 행장의 선임을 정부 관료출신의 ‘낙하산인사’라고 반대하며 한 달 가까이 출근 저지운동을 벌이던 상황에서 채택됐다.
노조는 금융위와 민주당이 노사 공동선언문을 합의할 때 뜻을 같이했던 만큼 금융위에서 노조추천이사 임명을 거부한 것이 약속을 어긴 행위라고 바라보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총선 공약에서도 노조추천이사제 법제화를 내걸었던 만큼 기업은행 노조추천이사 선임 무산을 바라보는 노조의 반응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금융위 측에서 노조추천이사 선임을 거부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며 “합의한 내용이 이행되지 않은 만큼 투쟁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결국 윤 행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은행 노사관계가 다시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노사갈등을 봉합하는 데 힘써야 하는 곤혹스런 처지에 놓이게 됐다.
윤 행장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노조 출근 저지운동에 부딪힌 뒤 기업은행 영업점 직원 성과평가체계 문제, 시간외근무 문제, 연말 노사 임금단체협약 문제 등을 두고 계속 대립해 왔다.
윤 행장이 노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며 갈등이 봉합된 사례가 많았지만 노조에서 처음부터 윤 행장 선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만큼 근본적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 행장은 최근 서면 기자간담회에서 기업은행 노조를 두고 “그동안 노사관계를 건설적으로 풀어가는 데 힘든 점이 많았지만 앞으로 성숙한 노사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노조추천이사 선임 무산은 노조의 신뢰를 깰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악재로 꼽힌다.
기업은행 노조는 금융위와 민주당뿐 아니라 윤 행장에도 책임이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조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추가로 추천할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윤 행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노조 측에서 추천한 후보 3명 가운데 1명만을 금융위에 제청했다는 것이다.
윤 행장이 노조추천이사제를 정식으로 도입하려면 기업은행법 개정 등 법률적 절차가 필요하다며 소극적 태도를 보인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노조 측은 노조추천이사 선임을 민주당 및 윤 행장과 약속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있는데 윤 행장은 이를 법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원칙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윤 행장 임기 안에 기업은행에 노조추천이사 선임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도 있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들이 대부분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기업은행에서 이를 선제적으로 추진한다면 정부와 여당을 향한 여론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에서 실세로 꼽히는
이인영 장관을 향한 기업은행 노조의 공세가 강화된다면 여론이 더 악화할 수도 있어 정부 차원에서도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KB금융지주 등 노조추천이사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던 다른 금융회사도 기업은행의 유보적 태도를 고려해 시기를 늦추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12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은행에 노조추천이사 선임을 요구하며 기업은행 노조 지원사격에 나섰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