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올해 성과주의 도입을 놓고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들과 시중은행장들은 성과주의 도입에 관심을 쏟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성과주의 확대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실제 성과주의 적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성과주의에서도 개인별 평가시스템에 따른 성과연봉제 도입을 최우선 과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은행 노동조합은 강력히 반발하며 대규모 투쟁으로 맞설 움직임을 보이고 잇다.
이에 따라 은행 CEO들은 보수 대신 인사나 차등형 임금피크제 등에 성과주의 우회로 찾기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입행원을 대상으로 임금체계 차등화를 시도하는 은행도 나타나고 있다.
◆ 은행권 CEO, 성과주의 도입 강조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은 올해 들어 성과주의 도입에 호응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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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 |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은 신년사에서 “일 잘하는 직원이 칭찬받고 잘 돼야 조직에 건전한 경쟁을 불러온다”며 “KB금융에서도 성과와 역량에 따라 대우받는 풍토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도 최근 “성과주의 정착을 위한 전략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고 있다”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인력에 대해서도 성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여러 운용방안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은행 최고경영자들은 성과연봉제를 확대적용하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초 “개인의 성과를 평가하는 체계를 도입하기 위해 성과측정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도 최근 “올해 안에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노조를 통합하고 임금과 직급체계를 일원화할 계획”이라며 “이 과정에서 성과제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은행 최고경영자들의 이런 발언은 성과주의를 도입해 은행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요구를 의식한 것이다.
은행은 2011~2015년 영업수익이 매년 평균 3.7%씩 줄었다. 이 기간 저축은행은 12.3%, 자산운용은 5.5%, 생명보험은 4.6%씩 영업수익이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은행 임금수준은 2014년 기준으로 모든 산업의 평균임금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139.4%에 이르렀다. 임금인상율도 47%로 모든 산업 평균인 37%보다 높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은행 등 금융업계에서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 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천편일률적 성과보상체계”라며 “업무성과가 많은 직원에게 많은 보수가 돌아가게 하는 성과에 따른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머나먼 성과연봉제 도입, 노조 반발 거세
은행 최고경영자들이 성과주의 도입을 강조하지만 갈 길은 멀다.
KEB하나은행은 현재 노조와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번 임단협에 성과주의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도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노조에 직급별 기본급 상한제를 확대하고 개인성과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에 13일 타결된 임금단체협상에 이 내용을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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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29일 금융노조가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공공부문 노동조합들과 함께 성과연봉제 시행 반대시위를 하고있다. |
우리은행 노사도 지난해 12월24일 임금인상만 합의하고 개인평가제도 등에 대한 논의를 중단했다. 회사는 성과주의 도입을 요구했지만 노조가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하자 일단 논의를 밀어놓기로 한 것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개별은행 노조에 성과주의와 관련된 합의를 금지하는 내용의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노조는 지난 13일 성명서에서 “성과주의 보상체계는 금융서비스 질 저하, 불완전판매 등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가중시킨다”며 “정권의 숙원사업을 위해 국민의 월급에 손을 대겠다는 후안무치한 발상에 전면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런 은행 노조의 반발을 의식해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부터 성과주의를 도입해 시중은행으로 퍼뜨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금융권 노사합의의 틀을 존중하고 자율적 확산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은행 노조도 성과주의를 도입할 경우 총파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맞서고 있어 임 위원장의 의도대로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CEO들은 금융위의 성과주의 도입 압박과 노조의 강력한 반발 사이에서 고심할 수밖에 없다”며 “은행이 노조와 합의점을 찾고 성과주의제도를 시행하는 데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마다 현안이 산적한 상태에서 노사갈등을 무릅쓰고 성과주의 도입에 주력하기 힘들 수도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초 “성과주의도 중요한 안건이지만 여러 안건 중 하나”라며 “KEB하나은행은 통합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어 다른 은행보다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밝혔다.
◆ 인사 등 '뒷길' 찾은 성과주의 도입
시중은행들은 ‘특별승진’을 확대해 성과주의를 우회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노조와 합의해야 하는 성과연봉제보다 도입하기 쉽고 직원들의 거부감을 해소하는 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23일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 8명을 특별승진했다. 신한은행에서 지금까지 시행한 특별승진 가운데 최대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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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23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신한은행 2015년 종합업적평가대회'에서 조용병 신한은행장(가운데)과 특별승진자들이 사령장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올바른 성과주의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탁월한 성과를 거둔 직원에게 특별승진의 기회를 부여했다”며 "앞으로도 현장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린 직원에게 승진뿐 아니라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KEB하나은행도 지난 6일 우수한 영업실적을 낸 행원급 직원 6명을 특별승진했다. NH농협은행은 부장급 이하 정기인사에서 성과우수자인 직원 140여 명을 승진 연한과 관계없이 발탁하기로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특별승진은 노조의 반발을 피하면서도 성과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은행 직원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장치”라며 “시중은행들이 앞으로도 노사합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승진과 포상 등 인사보상을 통해 성과주의 도입의 밑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들이 실시하는 ‘차등형 임금피크제’도 같은 맥락이다. 차등형 임금피크제는 우수한 성과를 올린 직원에 한해 임금피크제 대상이어도 연봉을 깎지 않고 정년을 보장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임금피크제 대상인 부지점장급 이상 직원 140여 명 가운데 좋은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된 50명에 대해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5월부터 일반적 임금피크제 외에 영업직원으로 일하면서 성과에 따라 기존 연봉의 최대 150%까지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임금피크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몇몇 은행은 신입행원을 대상으로 임금체계를 차등화하고 있다.
한국SC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뽑은 신입행원 전원에게 100% 연봉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부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연봉제 적용을 확대한 것이다.
JB금융지주 계열인 전북은행과 광주은행은 신입행원의 직군을 통합해 5급 일반직 행원의 초임연봉을 기존보다 1200만 원 낮췄다. [비즈니스포스트 우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