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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회계법인, 길이 안 보인다

최용혁 기자 yongayonga@businesspost.co.kr 2014-05-30 14: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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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는 회계법인, 길이 안 보인다  
▲ 좌측부터 함종호 안진회계법인 사장,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 권승화 한영회계법인 사장, 김교태 삼정회계법인 사장

회계법인들의 고민이 깊다. 2011년까지 반짝특수로 호황을 누렸으나 그 뒤로 성장은 정체돼 있다. 회계법인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덤핑경쟁이 난무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회계감사가 돈이 되지 않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돈 되는 컨설팅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감사에 배치하는 회계사가 줄었고 부실감사에 대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회계법인이 본업인 감사에 집중하지 않고 자문 서비스에 치중하는 데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서 회계법인의 컨설팅 업무를 금지하는 한편 자율적으로 회계법인을 정하는 자율수임제를 이전처럼 외부감사인 지정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기업들이 가세하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회계법인들 내부에서도 외부감사인 지정제의 유불리를 놓고 계산이 한창이다.

◆ 갈수록 줄어드는 회계법인 수익


삼일회계법인은 2010년 이후 줄곧 매출이 하락세다. 2007년 삼일회계법인의 수임금액은 3595억 원에서 2010년 4650억 원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그뒤 감소세로 돌아서 2012년 4570억 원에 그쳤다.

삼일회계법인은 국내 회계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하고 있는 초대형 법인이다. 그런데도 수임금액이 계속 감소하는 것은 회계법인들이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회계법인들의 매출하락은 반짝특수가 사라진 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0년 전후로 국내기업들은 회계기준을 국제회계기준으로 변경해야 했다. 이때 회계법인들은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이 특수가 사라진 뒤 이 특수를 대체할 만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매출감소의 또 다른 원인은 저가수임이다.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체 외부감사 대상기업의 평균 자산규모는 2012년에 비해 10% 증가했다. 그러나 평균 회계감사 수임료는 2780만 원에서 2800만 원으로 제자리 걸음을 했다. 회계법인의 수임료 증가율이 기업의 자산증가율에 훨씬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회계법인들이 사실상 수임료를 낮추면서 치열하게 수임경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회계연도에서도 상당수의 기업들이 회계감사 수임료를 10% 이상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수임료를 반토막 낸 기업들도 적지 않다.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이번 회계년도 감사인을 삼정회계법인으로 변경하면서 1억5500만 원에 계약했다.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에 2억7천만 원을 냈는데 절반 가까이 깎은 셈이다. 웅진에너지도 감사인을 한영에서 삼정으로 바꾸면서 수임료를 30%가량 싸게 계약했다.


청년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회계법인들이 제살깎기식 영업을 한 것“이라며 "낮은 수임료로 과거와 비슷한 수준의 감사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강성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도 회계시장이 경제성장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경제규모는 많이 커졌지만 감사보수는 제자리 걸음”이라며 “적정보수라는 것은 회계감사에 투입된 시간과 노력에 합당하는 수준인데 현재 우리의 감사보수는 미국 등 선진국의 20~30%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과 비교할 때 자산대비 회계감사 수수료 비율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 2013년 현대자동차는 자산총액 121조 원 중 0.0001%에 불과한 15억 원을 감사수수료로 냈다. 미국GM은 자산총액 164조 원 중 0.028%에 이르는 462억 원을 감사수수료로 지불했다.

  흔들리는 회계법인, 길이 안 보인다  
▲ 삼일회계법인의 연간 매출액 구조


◆ 컨설팅사업 비중 키우는 회계법인들


회계법인들은 살 길을 찾아나섰다. 대표적인 분야가 컨설팅이다. 회계감사 수임료가 줄어들면서 비감사업무로 눈을 돌리고 있다. 회계법인들의 컨설팅 매출액은 벌써 전체매출액의 40% 안팎을 차지한다.


대형법인 출신의 한 회계사는 “회계법인 입장에서 위험은 크고 수임료는 적은 회계감사보다 수익성이 좋은 업무를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컨설팅사업 확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회계법인 본연의 업무인 회계감사보다 컨설팅사업에 치중하다 보면 회계법인 본연의 역할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공인회계사법 일부 개정법안'을 발의하면서 “회계법인의 컨설팅사업 수주로 감사인의 외부감사 대상회사에 대한 눈치보기가 심해졌다"며 "감사인의 독립성과 외부감사의 품질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회계감사를 하는 회사로부터 컨설팅 용역 수주 가능성을 고려해 회계감사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회계법인들이 감사업무보다 컨설팅이나 세무업 등에 관심을 쏟으면서 자연스럽게 회계사들이 홀대받고 감사의 전문성은 갈수록 떨어지게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최근 동료 중 상당수가 감사업무보다 세무나 기타업무 쪽으로 배치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소회계법인의 경우 컨설팅업무가 사라지면 법인경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하소연한다. 한 중소회계법인 대표이사는 “중소회계법인은 대부분 감사대상회사에게 비감사업무를 제공함으로써 수입원을 다양화하고 회계법인의 전문능력도 유지하고 있다"며 "비감사업무 제공기회 자체를 박탈하면 대형 회계법인들이 회계감사를 싹쓸이를 하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말했다.

◆ 왜 30년 전 사라진 감사인 지정제가 거론될까

기업이 감사인을 정하는 자율수임제가 시행된 뒤부터 회계법인은 ‘을’의 위치로 전락했다. 회계법인끼리 치열한 경쟁으로 회계법인의 수익성은 약해졌고 회계감사의 질도 낮아졌다는 의견이 많다.

  흔들리는 회계법인, 길이 안 보인다  
▲ 좌측부터 김기준 김기식 이종걸 새정치연합 의원
그러자 국회의원들이 법안발의에 나섰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모든 상장회사와 금융회사에 대해 정부가 외부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하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 의원의 개정안을 더욱 강화했다. 그는 상장회사와 합병해 우회상장이 예상되는 기업까지 감사인 지정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발의했다.

분식회계 가능성이 큰 일부 기업에 대해서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은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개정안에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했거나 부채비율이 일정수준 이상인 기업에 대해 정부가 감사인을 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법안들은 외부감사인 지정제도를 30년 만에 부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부감사인 지정제도 도입은 찬반의견이 엇갈린다. 회계업계는 대체로 환영한다. 한 회계사는 “지정제가 확대되면 회계법인간 경쟁이 줄어들어 감사보수가 상승할 것”이라며 “보수가 오른 만큼 적정인원이 투입돼 감사품질도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회계사들은 또 과당경쟁 때문에 나타나는 덤핑수임이 사라지고 회계사의 처우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오히려 회계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성을 갖추려면 경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인들은 특성에 맞는 맞춤형 감사가 아닌 획일적 감사는 오히려 부실감사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인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회계사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감사인 지정제로 과당경쟁이 사라지면 오히려 독립적 감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회계사는 “감사인 지정제로 변경되면서 완전한 을로 전락한 회계감사인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며 “감사대상 회사들이 수임을 무기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율수임제에서 외부감사인 지정제로 변경될 경우 삼일, 삼정, 안진, 한영을 포함한 대형 회계법인으로 수임이 몰리는 현상도 일정부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국내 127개 회계법인 중 4대 회계법인의 시장점유율은 매출액 기준 60%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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