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동산거래분석원’의 조속한 출범에 나섰으나 국민의힘의 비협조로 난항이 예상된다.
보수야권은 부동산거래분석원이 개인 사이 부동산거래를 감시할 빅브라더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여권의 법안 제정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31일 기획재정부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29일 내놓은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의 한 축으로 부동산거래분석원 신설에 힘을 싣고 있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은 부동산시장의 이상거래를 모니터링하고 부동산시장 교란행위 여부를 분석·조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등 행정기관과 금융감독원, 한국부동산원 등 공공기관의 인력과 감정평가사, 세무사, 회계사 등 민간 전문 인력을 채용해 구성된다.
정부는 시장 교란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금융과 과세정보 등을 제한적으로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부동산거래분석원에 부여하기로 했다. 다만 수사기능은 부여되지 않는다.
시장 교란행위 의심사례와 관련해 개인 금융과 과세정보를 '제한적'으로 조회하도록 하고 수사기능은 배제했다고 하지만 부동산거래분석원이 사실상 ‘감독기구’ 역할을 할 것이란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부가 설립을 추진하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은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1월 발의한 ‘부동산거래 및 부동산서비스산업에 관한 법률'(부동산거래법)의 틀을 주로 따르고 있다.
이 법안을 살펴보면 부동산거래분석원은 신고된 부동산거래 조사를 위해 사업자등록 정보, 과세정보 등을 국세청 등 행정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 또한 금융거래정보와 신용정보도 금융회사에게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정보가 형사사건 수사, 조세탈루 조사, 조세체납자 징수, 금융감독업무 등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조사결과를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에게 보낼 수 있다.
정부는 위법한 부동산 거래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의 금융정보를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부동산거래분석원이 ‘빅브라더’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도 일각에서 나왔다.
빅브라더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사회체계를 뜻한다.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비롯됐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언론매체를 통해 "세계에서 부동산 감독기구를 두고 시장을 계속 감시하는 나라는 없다"며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시장으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이런 지적을 두고 “부동산거래분석원은 감독보다는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교란행위를 추적하며 분석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라며 “부동산거래분석원이 하루 속히 설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애초 별도의 독립기관으로 금융감독원과 같이 ‘부동산감독원’ 설치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의 우려를 의식해 기존 국토부 산하 ‘부동산 불법행위 대응반’을 확대개편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홍 부총리는 2020년 10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에서 금융감독원과 같은 감독역할을 하는 기구를 제시했으나 협의 과정에서 모니터링하고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부동산거래분석원이 불법행위를 조사하는 과정이 일종의 감시활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홍 부총리는 "현재 금융정보분석원(FIU)도 금융거래에서 특이사항을 포착하거나 불법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며 "금융정보분석원에 대해서도 그처럼 말할 수 있는지 묻고싶다"고 덧붙였다.
금융정보분석원은 범죄자금의 세탁행위와 외화의 불법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된 금융위원회 소속기관이다. 금융기관으로 부터 불법거래, 자금세탁행위 등과 관련된다고 판단되는 금융거래 자료를 법집행기관에 제공한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거래에서 불법이 의심되는 근거가 있으면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하는 '의심거래 보고제도(STR)'와 하루 1천만원 이상 현금거래는 금융기관이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CTR)' 등을 운영해 자금세탁을 방지한다.
2020년 법안이 발의된 뒤 야당은 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 문제를 내걸고 반대했다. 여당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국회에서 법안이 계류됐다.
그러나 한국주택토지공사(LH) 사태로 법안 추진의 동력이 새로 생기면서 홍 부총리는 부동산거래분석원 설치에 적극 나섰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도 3월1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비정상적 부동산거래와 불법투기를 감독하는 기구를 설치하는 등 근본적 제도개혁에 함께 나서 주시기 바란다”며 부동산 감독기구 설치의 필요성 들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토지주택공사 사태로 체계적 부동산 감독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여야가 합의만 원활히 이뤄진다면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출범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동산거래법에 처벌 조항도 포함돼 여당 내부에서도 신중한 기류가 감지된다. 범죄행위를 놓고 봤을 때 형량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안에는 진정한 거래 의사 없이 거래 체결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로 정보통신망에 올리거나 시세조작을 목적으로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도 담겼다.
야당은 ‘제정법’인 만큼 공청회 및 전문가의 의견 수렴 등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 공청회를 열자는 여당의 제안도 사실상 거부하고 있어 여야 사이 관련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제정법은 입법기관에서 처음 제정하는 법으로 법안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만큼 꼼꼼한 검토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여권은 제정법이 아닌 기존 법안 개정을 통해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설치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거래법 제정이 아니라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을 통해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반부패 정책협의회 결과 브리핑을 통해 “시장교란 행위를 전문적으로 분석, 조사, 대응하는 부동산거래분석원을 신속히 출범시키겠다”며 “국회의 조속한 입법적 뒷받침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