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대그룹 전문경영인들이 새해를 맞아 현대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과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현대정신의 회복을 내세웠다.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 등도 신년사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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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
권오갑 사장은 4일 현대중공업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우리 일터에 다시 현대정신이 넘쳐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사장은 직원들에게 “우리는 우리만의 현대정신이 있다”며 “우리의 열정과 신뢰로 우리 일터를 바꾸자”고 호소했다.
정수현 사장도 신년사에서 현대정신을 되살릴 것을 강조했다. 정 사장은 “현대건설이 대한민국 대표 건설사로 자리를 굳건히 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문화와 현대정신 덕분”이라며 “그런 문화가 조금씩 생명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올해는 네오(Neo )현대정신의 원년으로 삼고 현대건설의 도약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말한 현대정신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창업정신과 맞닿아 있다. 일부 범현대 계열사 CEO들은 현대정신보다 더 구체적으로 정 명예회장을 거명하기도 했다.
이백훈 현대상선 부사장은 “수익성 강화, 원가 혁신보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라며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봐 해봤어?’라는 말씀은 우리의 부정적 사고를 꾸짖는 그분의 서릿발 같은 말씀”이라고 말했다.
강환구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우리 회사는 정주영 창업자께서 한적한 어촌에서 일군 기적의 역사”라며 “무에서 유를 일군 창업정신을 되새기자”고 당부했다.
윤문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도 “창업자님은 ‘일이란 것은 결국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저는 여러분이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가난과 낮은 학력 등 악조건 속에서 맨손으로 현대그룹의 성공을 이끈 입지전적 인물이다. 정 회장은 2001년 세상을 등져 올해로 16주기를 맞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인구에 회자된다.
정 명예회장은 201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기업인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20%의 득표율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5%),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3%) 등을 크게 제쳤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국내외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과거 우리나라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대표하는 정 명예회장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형편이 좋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었던 정 명예회장과 현대그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업황 둔화로 8분기 연속 적자를 내 사상 초유의 긴축경영에 들어갔고 현대건설도 해외 주력시장인 중동사업 부진 등으로 업계 1위 자리를 삼성물산에 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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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왼쪽)과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
현대상선은 실적부진에 따른 자금난으로 매각설까지 나온다. 과거 국내 1위 기업이었던 현대그룹의 위상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정 명예회장에 대한 향수는 범현대 계열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지난해 말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정 명예회장의 이름을 거명했다.
박 회장은 “이병철·정주영 두 사람이 지금과 같은 삼성과 현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꿈을 꿈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기업 CEO에 올라있는 대부분의 경영인들은 젊은 시절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을 보면서 성장했다”며 “지금처럼 기업 환경이 어려운 시대에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편에서 현대정신과 정 명예회장을 강조하는 것이 경영위기로 입지가 좁아진 범현대가 전문경영인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독자적인 색깔로 경영에 나서다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창업정신의 회복이라는 큰 그림에 맞춰 회사를 이끌어가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