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유럽연합에서 받는 기업결합심사는 어떤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조선업계에선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시장 점유율 상승에 따른 과점문제와 현지 선주사들의 실질적 피해 가운데 어디에 중점을 두고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판단할 지 고민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
유럽연합 경쟁당국이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는 곧 결과가 나올 유럽 크루즈선 조선사들끼리의 기업결합심사를 통해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경쟁당국인 집행위원회는 31일을 기한으로 이탈리아 핀칸티에리(Fincantieri)의 프랑스 아틀란틱조선(Chantier de l`Atlantique)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핀칸티에리와 아틀란틱조선은 모두 크루즈선 전문 조선사로 한국 조선사들과는 주요 시장이 겹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도 이 심사의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 크루즈선 조선사들의 기업결합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과 구도가 매우 비슷하다”며 “이 기업결합의 결과를 통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어떤 기준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를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핀칸티에리는 2019년 말 수주잔고 기준으로 글로벌 크루즈선 건조시장에서 점유율 32%로 1위 조선사에 올랐다. 2위는 점유율 30%의 독일 메이어베르프트(Meyer Werft), 3위가 점유율 26%의 아틀란틱조선이다.
핀칸티에리와 아틀란틱조선의 기업결합은 크루즈선 건조시장에서 점유율 58%의 과점 조선사가 탄생하는 것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승인할 것인지의 문제인 셈이다.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6월 한국조선해양에 기업결합심사의 중간결과를 통보하면서 원유운반선과 컨테이너선 건조시장의 과점 우려는 해소됐지만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등 가스선 건조시장의 과점 우려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은 2019년 말 수주잔고 기준으로 글로벌 LNG운반선 건조시장의 점유율 1위와 2위 조선사다. 기업결합이 성사되면 시장 점유율 60%의 과점 조선사가 탄생한다.
크루즈선 건조시장에 발주처들이 고려할 옵션 조선사로 메이어베르프트가 있듯이 LNG운반선 건조시장에도 점유율 25%의 3위 삼성중공업이 있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유럽연합의 반독점법에 따르면 시장 과점의 판단기준은 점유율 40%다.
유럽연합은 반독점법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며 그리스와 노르웨이, 영국 등 글로벌 주요 해운사들이 모인 지역이다. 이에 유럽과 한국의 조선사 합병은 모두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생산능력의 축소를 전제로 하는 조건부승인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두 기업결합심사를 놓고 본심사뿐만 아니라 심층심사를 1차와 2차까지 거치면서 사안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심사의 결론이 미뤄지는 것은 집행위원회가 조선업의 특성과 선주사들의 실질적 피해를 따져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조선업 전망 및 향후 발전전략’ 보고서에서 “조선업은 주문형 생산방식의 거대 조립산업으로 기술력과 자본, 후방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지속될 수 없다”고 조선업의 특성을 설명했다.
그런 만큼 시장에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독과점이 나타나기 쉬운 산업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선박은 100% 주문 제작방식으로 생산되는 제품인 만큼 선주사와 조선사의 관계에서는 발주처인 선주사가 ‘갑’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크루즈선과 LNG운반선은 여러 선박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고부가선박으로 고도의 건조기술과 설계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소수의 조선사들만이 시장에서 활동하는 구도를 깨뜨릴 만한 경쟁자가 빠른 시일 안에 나타날 가능성이 낮다.
▲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 <한국조선해양>
집행위원회가 독과점을 우려해 생산능력의 축소를 전제로 하는 조건부승인 결론을 내린다면 제한된 생산능력을 차지하기 위한 발주처들의 경쟁이 심화해 선박 건조가격이 높아지게 된다.
크루즈선이나 LNG운반선 모두 주요 발주처는 유럽 선주사들이다.
법률에서 정한 수치상의 과점 가능성을 해소하기 위한 조건부승인은 오히려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들의 피해와 같은 효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집행위원회도 선주사들이 입게 될 실질적 피해에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앞서 12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대중공업그룹이 3월 안에 유럽연합 기업결합심사의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며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생산능력 축소 등 조건부승인과 관련해서는 논의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심사 전례를 볼 때 한국조선해양이 조건 없는 승인을 받아낼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990~2019년의 30년 동안 기업결합심사의 심층심사를 191건 진행했으며 158건을 승인했다.
승인된 기업결합 158건 가운데 조건없는 승인은 29건 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