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죄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이 18일 열린다. 2017년 2월 기소 이후 거의 4년 만에 결론을 앞두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1심에서 징역 5년,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에서 뇌물인정액을 늘려 파기환송했다.
이 부회장은 2020년 재판을 병행하면서도 활발한 현장경영을 이어왔다. 2021년에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현장과 삼성리서치 등을 방문하며 현장경영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경영활동의 전면중단을 피할 수 없다. 국내 재계 안팎은 물론 외신들까지 이 부회장 재판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은 오너경영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해 온힘을 쏟았다. 이 부회장은 2020년 12월30일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우리가 잘하는 사업에 집중해 회사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호소했다.
11일에는 파기환송심에서 양형 판단요소로 고려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나 지속적 활동을 보장했다. 파기환송심 전문심리위원단은 앞서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이 이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지에 달려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이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또 다른 재판인 불법 경영권 승계 혐의와 관련한 재판은 14일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연기되는 등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피한다면 당분간은 사법 리스크에서 상당 기간 벗어나 비교적 정상적으로 경영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 1위에 오른다는 ‘반도체 비전 2030’ 비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R&D)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오너경영활동이 제한되면 의사결정 속도가 뒤쳐질 수 있다고 삼성전자는 우려한다.
삼성전자는 특히 시스템반도체사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파운드리부문에서 글로벌 1위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0년 파운드리시장 점유율은 TSMC가 54%, 삼성전자가 17%로 여전히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격차를 좁혀야 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전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신규공장 착공을 앞두고 있다. 2024년부터 5나노 제품 생산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본에 반도체 후공정 패키지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역시 평택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TSMC와 비교해 해외 생산기지 확보 움직임은 더디다. 파운드리사업 성장을 위해서 글로벌 고객 유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대목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미국 오스틴에 부지를 확보하고도 증설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해외사업 확대에는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것으로 여겨져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외 증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시선도 있다.
대형고객 확보를 위한 이 부회장의 직접적 역할을 주목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파운드리업계의 최대 잠재 고객으로 여겨지는 인텔이 조만간 본격적으로 반도체 외부생산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인텔 파운드리 물량 확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 성장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TSMC가 인텔 수주에서 삼성전자보다 다소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블룸버그는 8일 "인텔이 2주 안에 TSMC나 삼성전자에 외부 위탁생산 여부를 최종 결정할 수 있다"며 "TSMC에 비해 삼성전자와 논의는 예비수준”이라고 보도해 TSMC가 우위에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이런 점을 놓고 당장 평가를 바꾸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열세를 뒤집으려면 오너가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과거 2012년과 2013년 당시 인텔을 이끌던 폴 오텔리니 회장을 직접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한 적이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모바일사업에서 인텔과 협력을 강화하는 마중물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사법 리스크가 완화된다면 꼭 인텔이 아니더라도 이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고객사 확보나 글로벌 인수합병 시도 등 해외 경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사업을 각별하게 챙기고 있다. 2021년 새해 첫 행보가 평택 파운드리 생산라인이었다는 점에서 시스템반도체사업을 향한 이 부회장의 의지가 나타난다.
2020년 10월에는 김기남 DS부문장 부회장과 네덜란드를 방문해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 경영진을 만나 장비 공급 확대를 논의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