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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록(왼쪽)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 은행장 |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은 왜 싸우는 것일까?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로 촉발된 KB금융그룹 내부갈등이 금융감독원의 대대적 특별검사로 비화됐다. 금융계는 이번 문제의 실상은 임 회장과 이행장의 권력다툼으로 해석한다.
금융지주에서 1인자와 2인자의 싸움은 KB금융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금융도 마찬가지이고 이제 수면 아래에 잠복한 신한사태도 돌아보면 1인자와 2인자의 싸움이었다. 결국 금융지주의 지배구조가 끊임없는 1인자와 2인자의 싸움을 낳게 한다.
◆ 이건호 행장 “금융지주가 간섭이 문제”... 임영록 회장 겨냥?
20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정병기 KB국민은행 상임감사위원으로부터 은행 및 카드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해 이사회 결정에 문제가 있다며 검사를 요청하자 특별검사에 들어갔다.
KB금융지주 내 경영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은행 및 카드의 주 전산시스템을 기존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올해 4월 은행 및 카드 이사회에서 전산시스템 교체가 확정됐다.
그러나 정 감사가 이사회가 전산시스템 교체를 결정하는 데 참고한 자료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건호 행장은 정 감사의 의견을 수용해 이달 초부터 내부감사를 진행했다.
정 감사는 감사보고서를 지난 16일 감사위원회에 제출했지만 감사위원회는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내부감사 중단을 결정했다. 이 행장은 19일 열린 이사회에서 은행장 권한으로 안건을 부의했지만 이사회에서도 내부감사를 중단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정 감사는 금감원에 이사회 결정과정을 검사해 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정 감사는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하기 전 이 행장의 인가를 받았다.
이 행장은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한 것은 깨끗하게 의혹을 풀고 넘어가기 위한 것”이라며 “정 감사가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하겠다고 해서 동의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이 전산시스템 교체문제를 두고 금감원에 감사를 요청한 데 대해 금융계 인사들은 이건호 행장과 임영록 회장 간 갈등이 노골화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 행장은 이사회의 투명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임 회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금감원에 특별감사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행장은 전산시스템 교체제가 불거진 데 대해 “은행문제에 대해 왜 금융지주가 나서는지 모르겠다”며 “은행의 전산시스템 결정에 대해 금융지주는 간섭을 못하게 돼 있고 개입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행장이 금융지주를 언급한 것은 임 회장을 겨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행장과 임 회장 간 갈등은 KB금융지주가 지난 4월 조직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두드러졌다.
KB금융지주는 쇄신안을 금융지주 차원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체 감사에 맡겼던 은행에 대해 지주 차원에서 감사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KB국민은행은 KB금융지주가 발표한 쇄신안을 자체적으로 검토한 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도 대립각을 세웠다.
◆ 금융지주 회장, 절대 권력 행사
임 회장이 쇄신안을 발표한 것을 놓고 쇄신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제왕적 권력을 행사한 금융지주 회장들의 전례를 답습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쇄신안의 목적이 결국 내부통제 강화에 있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쇄신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인사 물갈이를 통해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임 회장은 지난 3월 주총에서 은행의 사외이사들을 대거 교체했다. 교체된 사외이사는 모두 5명이었는데 대부분 임 회장과 인연이 닿은 사람들로 채워졌다. 임 회장은 또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사회 운영도 개편했다.
임 회장을 비롯한 많은 금융지주 회장들이 재직기간 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현행 금융그룹 지배구조 아래에서 금융지주 회장은 사실상 오너와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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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
금융그룹은 금융지주사 체제로 운영된다. 금융지주사는 애초 카드사태처럼 계열사 부실이 은행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금융지주사 체제 아래에서 은행과 함께 증권이나 보험 같은 비은행계열사의 동반성장도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금융지주가 금융그룹의 지배구조 꼭대기에 위치하게 되면서 금융지주를 지배하는 금융지주 회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됐다.
현행 금융그룹 지배구조에서 금융지주 회장은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전 계열사에 대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은행업무에 사사건건 개입하면서 ‘은행장 위에 은행장’이라는 말도 나왔다
또 금융지주 회장은 이사회를 추종세력들로 채워 이사회가 선출하는 회장직 연임도 가능하다.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이런 방식으로 17년 동안 회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황제금융’이라는 말조차 나왔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6월 시중 금융그룹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금융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내놨다. 이 방안에 이사회 안에 상시로 임원추천위원회를 두고 사외이사의 활동내역과 보수 등을 공개하는 내용이 담겼다. 제왕적 회장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를 강화하고 줄대기 인사로 얼룩진 사외이사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내놓은 이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금융업 관계자는 “이사회 안에 임원후보 추천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이는 대주주가 있는 금융회사에서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또 그는 “사외이사를 감독기관이 평가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관치의 가능성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금융그룹 내 1, 2인자 권력 다툼...“KB 앞날 걱정”
KB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문제가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간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는 이유도 지주회사체제로 운영되는 금융그룹의 지배구조 탓이 크다.
지주회사체제 아래에서 은행장은 금융지주 회장으로 가기 위한 관문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금융지주 회장은 2인자를 견제하게 되고 결국 1인자와 2인자의 갈등으로 비화된다.
금융그룹 내 1, 2인자 간 갈등의 대표적 사례가 이른바 신한사태다.
2010년 9월 당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이백순 신한은행장과 협력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신한은행은 신 사장이 은행장 시절 친인척 여신 관련 민원이 접수됐고 이에 내부조사를 통해 혐의가 입증돼 고소했다고 밝혔다.
금융업 관계자들은 이를 신한 내부 권력다툼으로 봤다. 1인자 라 회장이 3인자 이 행장과 손 잡고 2인자 신 사장을 몰아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신 사장을 지지하는 주주들이 이 행장을 맞고소 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법정에 서게 됐다. 재판결과 신 사장은 2천만 원의 벌금형을, 이 행장은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신한사태로 신한금융은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대외신인도가 크게 하락하고 고액 예금자들이 다른 은행으로 옮겨갔다. 신한사태에 연루된 세 사람은 모두 불명예 퇴진했다. 하지만 라응찬 전 회장은 퇴임 이후에도 신한금융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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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
하나금융도 1인자와 2인자의 갈등이 빚어졌다.
최근 윤용로 외한은행장이 물러난 것에 대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윤 전 행장은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에 의해 중용돼 향후 하나금융을 맡을 인물로 꼽혀왔다.
김 전 회장은 1997년 하나은행장에 올랐다. 2005년부터 하나금융 회장을 맡아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왕 회장’으로 불렸다. 2012년 김정태 회장에게 하나금융 회장을 물려준 뒤에도 하나금융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김 전 회장을 압박하면서 그의 권력도 약화됐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하나은행의 미술품 구매에 대해 조사받던 중 고액의 고문료가 논란이 일자 고문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의 고문 임기는 올 3월까지였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김 전 회장 고문 사퇴시기에 맞춰 윤 전 행장을 물러나게 했다. 하나금융에 김 전 회장의 그림자를 제거하면서 잠재적 경쟁자를 내쳤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에 앞서 김 전 회장 인사들을 대거 물갈이하고 하나금융지주 사장 자리도 없앴다. 김 회장은 윤 전 행장의 사퇴를 계기로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KB금융그룹의 1, 2인자가 권력투쟁 양상을 보이면서 KB금융 전반의 경영차질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특별검사를 통해 이번 의사결정 과정뿐 아니라 KB금융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진단에 나선다고 밝혀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한 전직 임원은 “이런 것을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된 건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라며 “KB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