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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왼쪽),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가운데),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오른쪽). |
누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 수 있을까?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KDB대우증권 인수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대우증권을 인수합병해 증권사의 몸집을 대폭 키우면서 글로벌 투자금융(IB) 회사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하려고 한다.
투자금융은 기업공개(IPO), 사모펀드(PEF), 인수금융 등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을 뜻한다. 투자금융을 강화하려는 증권사는 최대한 많은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투자할 수 있는 사업도 늘어나게 된다.
국내 증권사들은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에 치중하고 있어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들에 비하면 구멍가게 수준이다.
이번 대우증권 인수전의 결과에 따라 초대형 증권사가 탄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주식위탁매매에서 벗어나 투자금융으로 증권업계 판을 바꾸는 선발주자가 될 수 있다.
◆ 글로벌 투자금융회사 만들 발판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현주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은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계열 증권사의 투자금융 역량을 확충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한국형 투자금융회사를 만들려면 증권사의 자기자본을 적어도 20조 원 규모로 확충해야 프로젝트에 과감하게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도 “한국투자증권을 아시아 최고의 투자금융회사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자기자본을 늘리겠다”고 역설했다.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할 경우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모두 자기자본 7조 원을 넘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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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
미래에셋증권은 3분기 기준으로 자기자본 2조5059억 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9561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에도 성공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여기에 대우증권의 자기자본 4조3968억 원을 더하게 되면 자기자본 7조8588억 원 규모의 증권사로 도약하게 된다.
한국투자증권은 3분기 기준으로 자기자본 3조3739억 원에 이른다. 한국투자금융이 대우증권을 인수해 한국투자증권과 합병하면 자기자본 7조7707억 원 규모의 초대형 증권사를 거느리게 된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일본 노무라증권이나 다이와증권은 28조 원대의 자기자본을 앞세워 해외에서 투자금융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해 자기자본을 늘린다면 해외에서 투자금융사업을 진행할 만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대우증권 인수는 2020년까지 시가총액 20조 원과 자기자본이익률(ROE) 20%를 이루겠다는 ‘비전 2020’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며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한다면 투자금융사업 강화 도 차근차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은 투자금융사업에서 초대형 증권사의 이점을 비교적 적게 누릴 가능성이 있다. KB투자증권은 자기자본 규모가 6097억 원에 그친다. 대우증권을 인수해 합병해도 5조65억 원 규모에 머물게 된다.
KB금융 관계자는 “KB투자증권은 지금도 채권자본시장(BCM) 1위를 달리고 있다” 며 “대우증권을 인수하면 투자금융사업에서도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강점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KB금융,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금융은 대우증권 매각 예비입찰에 1조8천억~2조 원대의 가격을 써낸 것으로 추산된다. 대우증권 주가가 하락하면서 예상 매각가격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그만큼 인수전에 참여한 금융회사들의 인수의지도 높아지고 있다.
◆ 정부도 밀어주는 증권사 대형화
금융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금융투자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증권사의 대형화를 유도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방안에 자기자본 3조 원을 넘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를 대상으로 기업신용공여한도 규제를 자기자본의 100%까지 완화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대형 증권사는 비상장주식시장을 운영하고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를 운용할 자격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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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
대우증권을 인수합병할 회사는 금융위의 이번 정책에 따라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다른 증권사들도 이런 혜택을 누리기 위해 몸집 불리기를 시도하면서 국내 증권업계의 재편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래에셋증권이 최근 유상증자를 결정하면서 내년에 6개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생기게 됐다”며 “다른 증권사들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9개 이상의 종합금융투자회사로 증권업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금융당국은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주식시장을 감안해 증권사들을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로 키우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김학수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증권사의 기업금융 기능을 강화해 한국형 투자금융회사를 키우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며 “증권사들이 고부가가치 업무인 투자은행사업 영역을 개척하도록 정책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스위스에 위치한 글로벌 투자금융회사 UBS그룹의 인수합병 사례에 주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UBS그룹은 스위스연방은행과 스위스은행의 합병을 통해 만들어진 대형 투자금융회사다. UBS그룹은 우리나라보다도 적은 스위스 인구를 무릅쓰고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글로벌 투자금융회사 8위권에 들어갈 발판을 마련했다.
◆ 명확한 투자금융 사업전략 없으면 속빈강정
대우증권 인수전이 국내 증권업계의 투자금융사업 확대로 이어지려면 정부와 인수주체인 증권사들이 명확한 투자금융사업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대형 증권사가 출범해도 이전처럼 주식위탁매매나 채권거래에 치중하면 투자금융사업에서 제자리걸음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대형 증권사가 탄생한다 해도 명확한 계획이 없으면 기존 증권사와 차별화하지 못한다”며 “자칫 몸집만 커진 상태에서 구조조정의 갈등이나 무리한 가격경쟁에 따른 ‘승자의 저주’에 시달릴 우려만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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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 |
금융위가 2011년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의 증권사 5곳에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인가를 내줬을 때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금융위는 당시에도 한국형 투자금융회사를 활성화한다는 명목 아래 대규모 기업금융을 주관할 수 있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운룡 새누리당 의원이 이달 초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형 증권사 5곳에서 2011년부터 2015년 1분기까지 낸 전체 영업수익에서 기업금융 수익의 비중은 평균 1.4%에 그친다.
이 증권사들은 이 기간 전체 영업수익에서 증권과 파생상품 등 자기매매 수익의 비중이 60%를 차지했다. 몸집만 불렸지 투자금융사업에 투자하기보다 자기매매에 치중한 것이다.
이 의원은 “대형 증권사들이 정부의 정책의도와 달리 기업금융을 외면하고 주식시장 변동에 따른 단기성과를 내는 데에만 급급해 투자금융회사 본연의 기능을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