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현대차에 2470억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현대차는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현대차로서는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북미시장 공략에 온힘을 쏟고 있는데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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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미국 몬태나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13일(현지시각) 현대차에 2470억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지난 2011년 현대자동차의 ‘티뷰론’을 몰던 10대 남매가 숨진 교통사고의 원인이 현대자동차의 제조결함이라고 배심원단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말 그대로 가해자에게 징벌을 가할 목적으로 부과하는 손해배상이다. 따라서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부과한다. 이 사건에서 배심원단은 피해자의 사망에 따른 실제 손해액을 26억7천만 원으로 산정했다. 동시에 배심원단은 현대자동차가 불량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친 혐의에 대한 징벌적 의미로 2470억을 추가로 부과했다.
이번 현대자동차 판결에서 배심원단은 “2005년형 현대 티뷰론의 조향너클(steering wheel)이 부러져 자동차의 방향이 휙 틀리면서 중앙선을 넘어 맞은편에서 오던 차를 들이받은 것”이라는 유족의 주장을 인정했다. 조향너클은 자동차 바퀴에 붙어 있는 부품으로 조향너클이 부러지면 바퀴제어가 불가능하다.
문제의 조향너클 부품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티뷰론을 비롯한 몇 개 차종에 쓰였다. 이 부품은 이전에도 여러 자동차에서 결함이 발견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반면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에 불꽃놀이용 화약이 폭발한 흔적을 근거로 운전자들이 불꽃놀이에 정신이 팔려 핸들을 꺾었다고 항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대차 미국법인은 이번 1심 결과에 대해 “이번 사건은 현대차의 잘못이 아니므로 판결은 바뀌어야 한다"면서 "즉각 항소 할 계획”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현대자동차는 항소에 지더라도 2470억 원의 벌금을 다 낼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판결이 진행되는 몬테나주는 징벌적 배상의 상한선을 102억 원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비슷한 판결이 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우리나라에서 판결을 받았다면 사망자들이 장래에 얻을 수 있었던 수입 26억7천만 원에 대한 배상판결만 받았을 것이다.
현대차가 지난 3년 동안 매년 8조 원이 넘는 이익을 거둔 것을 고려하면 수십억 원의 벌금은 큰 의미가 없다. 만약 제조결함을 인정하고 전 차량을 리콜하는 비용이 벌금보다 크다면 현대차는 굳이 제조결함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택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가장 많이 지급한 회사는 도요타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3월 도요타가 차량 급발진 문제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 돈 1조3천억 원의 벌금을 물렸다.
도요타 사건은 200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렉서스 차량을 몰고가던 일가족 4명이 차량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로 숨진 사건이다. 당시 도요타는 "가속페달이 차량 바닥 카펫에 끼었거나 운전미숙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차량결함 의혹을 부인하다 뒤늦게 급발진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