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에 따른 책임론을 피할 수 있을까.
매각 무산의 가장 큰 원인이 코로나19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매각을 진두지휘했던 이 회장 역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말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최종 결렬되면 채권단의 움직임이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에 2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을 고려하면 지원이 한참 늦어졌다. 그동안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지원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경영상태와 재무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지난해 말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고도 9개월 가까이 경영주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허송세월’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이동걸 회장도 아시아나항공 안팎에서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 무대에 올린 주인공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종용해 박 전 회장의 백기투항을 받아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결과적으로는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했다. 오히려 지원만 늦어져 아시아나항공이 정상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항공업계 안팎에서 나왔다.
이 회장이 협상 과정에서 들고있는 패를
정몽규 HDC그룹 회장에게 다 내보이면서 끌려다녔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이 4월 말로 예정됐던 인수대금 납입을 연기했을 때부터 사실상 마음이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는데 그 이후로도 반 년 가까이 정 회장의 입만 바라보면서 주도권을 내줬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승자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앞으로 금호산업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루한 법정 공방을 통해 소모전을 벌일 가능성은 높아졌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둘러싸고 한화가 제기한 대우조선해양 이행보증금 소송은 8년이나 지나서야 마무리됐다. 금호산업과 HDC현대산업개발 모두 명분을 꾸준히 쌓아왔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가리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회장은 혈세 투입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채권단은 출자전환 등을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취득해 최대주주로 올라 경영진 쇄신과 구조조정 등 체질 개선에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의 영구채 8천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출자전환하면 지분율이 37%까지 올라가 금호산업(31%)보다 많아진다.
그 뒤 새 주인을 금방 찾아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결국 오랫동안 산업은행 품에서 ‘세금먹는 하마’로 전락할 수도 있다.
형평성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항공사뿐만 아니라 여행사 등도 고사 직전에 놓인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고 자회사로 편입해 직접 정상화를 추진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좋은 새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의도 자체는 선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가 겪었어야 하는 경영 부실 책임과 코로나19 직격탄을 채권단이 맞게 된 것 아니겠느냐”며 “여기에다가 매각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매각 무산에 따른 후폭풍도 고스란히 채권단 몫이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 회장이 일방적으로 비판의 화살을 받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 회장이 막판까지 거래 성사를 위해 힘을 쏟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사실상 거래 성사를 위해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다 꺼냈다. 채권단 내부에서도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가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특혜 시비가 나올 수 있는 부담이 있음에도 크게 양보해 인수가격을 1조 원 낮추는 제안을 했다”며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이 회장으로선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