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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왼쪽) 한진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정부의 해운업계 구조조정 압박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상대로 한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비공식적으로 자발적 합병을 요구한 데 이어 구조조정 관련 회의에서 두 회사의 구조조정 방안을 공식적으로 다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의 압박을 대하는 두 회장의 입장에 온도차이가 감지된다.
조 회장은 한진그룹을 육해공 물류 삼각편대로 재편하면서 한진해운을 한 축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을 품게 되고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러나 현정은 회장은 현대상선의 존재에 현대그룹의 운명이 걸려 있다.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상선이 합병되면 그룹의 경영권이 위태로워진다.
◆ 조양호, 정부지원을 받는다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9일 또 다시 불거졌다.
현대그룹은 즉각 입장자료를 내 합병설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현대상선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 추진설과 관련해 정부로부터 권유나 통보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한진해운은 이날 따로 입장발표를 하지 않았다. 한진해운은 지난달 말 처음 합병설이 불거지자 “정부로부터 합병에 대한 검토를 요청받았지만 합병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두 회사의 이런 입장에 미묘한 차이가 담겨 있다.
이는 조양호 회장과 현정은 회장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지난해 한진해운을 품으면서 한진-한진해운-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육-해-공 삼각편대를 갖춘 물류종합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은 그 뒤 한진해운 경영정상화에 온힘을 쏟아 왔다. 이에 따라 한진해운은 지난해 2분기에 7분기 만에 영업흑자를 낸 뒤 올해 3분기까지 6분기째 연속 흑자를 냈다.
조 회장은 그동안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기회 있을 때마다 주문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외국에서 정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해 주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약하다”면서 “한진해운 자체의 생존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경쟁이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공개석상에서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해운이 해운상선을 인수해 규모를 키울 수 있게 되고 정부의 해운업 지원을 얻어낸다면 ‘일석이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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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일 한진그룹 창업 70돌을 맞아 창업주인 정석 조중훈 회장의 일대기를 정리한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 출간 기념식이 인천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에서 열린 가운데 기념사를 하고 있다. |
◆ 현정은, 그룹 생존 달려
현정은 회장은 현대상선이 합병되거나 매각될 경우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고민해야 한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증권과 현대아산, 현대유엔아이를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 지주회사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지분 22.43%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아산과 현대유엔아이 지분도 각각 67.58%, 27.28%씩 소유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 일가는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아산, 현대증권, 현대유엔아이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하지만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이 현실화하면 현대그룹 오너 일가는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합병과정에서 규모와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앞서는 한진해운의 역할이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규자금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규모가 더 크고 자금여력을 갖춘 한진해운 중심으로 자본확충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현 회장은 경영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회장이 결국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을 포기하고 현대증권과 현대아산 등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 매입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전달했다는 말도 시장에서 나돌았다. 부실이 심각한 현대상선을 산업은행에 넘기고 우량한 현대증권과 현대엘리베이터를 지키는 내용의 자구안을 마련해 산업은행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그룹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경영권 포기 등을 포함한 자구계획안을 제출한 적이 없으며, 현재까지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 합병설 왜 자꾸 나오나
정부가 한진해운 현대상선 구조조정을 강제하고 나선 배경에 이대로 두면 국내 해운업계가 모두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해운업이 구조적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부실이 더 확대되기 전에 고강도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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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현대상선은 2011년 3천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2012년 5천억 원대, 2013년 3천억 원대, 지난해 2천억 원대의 적자를 계속 내고 있다.
현대상선은 올해 상반기에도 영업손실 688억 원을 봤고 3분기에도 100억 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하락에 따른 비용절감과 원가절감 노력으로 손실폭은 줄었지만 흑자전환에 실패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부채규모만 6조 원대에 이른다.
한진해운도 상황은 현대상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3분기까지 6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냈지만 지난 10분기 동안 누적된 적자가 3200억 원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전망이 밝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을 넘긴다 해도 해운업 불황이 계속된다면 근본적인 정상화가 어렵다.
NH투자증권은 내년에도 중국경제 둔화와 유럽경기 부진 등으로 세계 해상운송시장의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송재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운업계는 2015년 벙커씨유 가격 하락에 따른 유류비 절감 효과를 기대했지만 운임하락 부담이 더 커지면서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을 기록했다”며 “한진해운은 4분기와 내년에도 시황침체로 특별한 실적개선 효과를 누리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 규모의 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요구
정부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규모의 경제’ 면에서 봤을 때 글로벌 해운회사들에게 크게 밀린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가별로 상위 대형 해운회사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회사의 합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운업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
당시 세계적으로 선박 수출입 물동량이 급감한 데다 컨테이너선의 초대형화 등으로 공급과잉 상태가 계속되면서 운임이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해운회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머스크 등 대형 해운회사들은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고 1만8천 TEU(1TEU는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하면서 운임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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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 |
이 과정에서 국가별로 1~2개의 대형 해운회사만 살아남는 구조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중국 국영 해운회사들은 뒤늦게 해운업계에 진입했지만 10위권 내에 2개 회사를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재 선복량 기준으로 한진해운은 세계 9위(62만 TEU), 현대상선은 16위(38만 TEU)다. 1위인 APM-머스크(301만 TEU)와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해운회사들이 몸집을 키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대형선박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는 2~3년 뒤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정부, 구조조정 추진할 수 있나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는 최근 구조조정 실무회의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구조조정 방안을 2차 차관회의 안건으로 올리기로 했다.
구조조정 차관회의는 금융위원장이 주재하는 각 부처 차관급 각료회의로 사실상의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로 불린다.
정부의 행보가 사실상 두 회사에 대한 압박이다.
류제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정부 주도의 기업구조조정에 직접 강제성은 없지만 정부가 만일 추가지원을 거부하면 채권단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자금지원을 중단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두 기업은 더 이상 정상적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두 회사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이 강제합병 논란으로 확산되자 즉각 해명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해명자료를 통해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자발적 합병을 권유하거나 강제합병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수출입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구조와 얼라이언스(동맹체) 중심의 글로벌 해운산업체계, 부산항의 환적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양사 체제 유지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의 반발이 나오자 관치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시키지 않더라도 어떤 식이든 정부가 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