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 GS그룹 회장이 하반기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허 회장은 디지털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총수에 올라 GS그룹을 둘러싼 경영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초석을 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상반기에는 GS그룹에 ‘
허태수의 색깔’을 입히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자료에 따르면 GS그룹 지주사 GS의 2020년 상반기 연결 영업이익 1667억 원은 2014년의 1346억 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83.3% 급감했다. 지난해 12월 그룹 총수에 올라 올해 실질적 첫 임기를 보내는
허태수 회장으로서는 만족스러울 수가 없는 실적이다.
상반기는 코로나19의 확산과 저유가 탓에 GS그룹뿐만 아니라 정유나 발전 등 에너지를 주력으로 하는 모든 기업들이 부진을 겪었다.
재계에서는 실적 부진을 극복하고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데 허 회장의 전략적 방향성이 모호하다는 말이 나온다.
허창수 전 GS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임기만료를 2년 앞두고 그룹 총수 자리를
허태수 회장에게 넘기면서 기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허 전 회장은 “혁신적 신기술의 발전이 기업 경영환경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고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우리도 언제 도태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지금을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적기로 판단했다”고 허 회장에 GS그룹을 맡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허 회장은 GS홈쇼핑 대표이사 시절 GS홈쇼핑에 디지털역량을 접목하며 몸집을 불려 GS홈쇼핑을 CJ오쇼핑과 함께 업계의 양대 강자로 키워낸 실적이 있다. GS그룹 오너일가도 이 점에 주목해 허 회장을 추대하는 데 합의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허 회장이 GS그룹 회장에 오른 뒤에는 눈에 띠는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허 회장은 취임 직후인 1월부터 스탠퍼드대학에서 기업혁신을 연구하는 디자인센터를 국내로 초빙해 심포지엄을 여는 등 그룹 전반에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인식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앞서 6월 열린 GS그룹 임원포럼에서는 “재택근무나 비대면 회의 등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빨라지는 만큼 디지털 역량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업무환경과 유연한 조직문화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허 회장이 임직원에게 요구한 내용은 모든 회사에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강조하고 있는 '기본' 그 이상이 아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한 디지털 역량 강화를 이미 그룹 차원에서 실행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며 “GS그룹이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는 하나 새로운 지점이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GS그룹의 주력이 정유와 발전 등 전통적 거대 장치산업이라는 점에서 허 회장이 디지털 전환을 통한 성과를 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6개월이 사업구조상의 획기적 개선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한 시간일지 몰라도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그룹의 사업역량을 미래 모빌리티에 집중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자 두 그룹의 계열사들이 모빌리티와 관련한 쪽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한 것이 좋은 사례다.
게다가 SKC와 LG화학 같은 계열사들은 코로나19 속에서도 2분기 실적이 오히려 개선되는 등 성과를 내기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허 회장이 하반기부터 그룹의 새 성장동력을 찾는데 더욱 힘을 쏟는 한편 단기적으로는 그룹 계열사들의 사업 다각화에 집중해 정유사업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펼 것으로 전망한다.
허 회장은 GS그룹의 새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준비를 어느 정도 해 뒀다.
GS그룹이 이날 설립을 발표한 'GS퓨처스'가 바로 그것이다. GS퓨처스는 허 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망한 벤처회사를 물색하기 위해 추진한 벤처 투자법인으로 지주사 GS가 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이 펀드에 약 1800억 원을 출자했다.
허 회장이 과거 GS홈쇼핑에 디지털 역량을 접목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던 것이 바로 벤처펀드다. 이 방식을 그룹차원에서 다시 시도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GS 관계자는 “미래 경영전략의 세부적 내용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