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대표는 대통령선거 출마의 차선책으로 서울시장 도전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의중이 중요한 만큼 섣불리 움직이기에도 조심스럽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안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을 거세게 비판하며 정부·여당에 각을 세우는 반면 통합당과는 보조를 맞추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도 안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의원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전면적 국정쇄신을 단행해야 한다”며 “국민에게 염장 지르는 대통령 밑에서 함께 염장 지르는 장관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와 유튜브 채널 등에는 17일 진중권 전 동양대학교 교수와 ‘문재인정부 폭정을 파헤친다’라는 제목의 긴급대담을 한다는 내용도 공개돼 있다. 이날 대담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부동산 정책, 취업 불공정, 조국·윤미향 사태 등이 다뤄진다.
국민의당과 통합당 소속 의원들이 참여하는 '국민미래포럼'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 대표와 국민의당의 움직임이 보수진영에 합류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이라는 데는 정치권에서 이견이 거의 없다.
안 대표로서는 국민의당이 확보한 중도 지지층을 기반으로 통합당에 합류해 보수 단일 대선주자로 나서는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서는 안 대표가 의석수 3개인 국민의당만 거느리고 큰일을 도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개혁을 통해 중도층을 흡수하려는 통합당의 움직임이 안 대표의 정치적 입지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날 통합이 공개한 새 정강정책 초안에서 기본소득이 ‘정강정책 1호’로 명시됐다. 국회의원의 같은 지역구 4연임을 제한하고 기초·광역의회를 통합하는 정치개혁 방안도 담겼다.
통합당 전신 새누리당 시절 정강정책에 포함됐다가 삭제됐던 ‘경제민주화’도 다시 포함됐다.
게다가 통합당은 당의 정체성에 진보적 개혁 색채를 입히는 동시에 그동안 통합당이 외면했던 호남, 청년 등을 향해 구애의 손길을 뻗치며 지지층 외연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안 대표로서는 기존 중도 지지층을 통합당에 빼앗길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는 통합당이 안 대표에게 매력을 느낄 요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말도 된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통합당의 개혁 노력의 성과가 일정 부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10~12일 진행한 8월 2주차 정당지지도 조사(주중집계)를 보면 통합당은 36.5%의 지지를 받으며 창당 후 처음으로 민주당(33.4%)을 앞섰다.
하지만 국민의당 지지율은 3.4%에 그쳤다.
총선 직전에 치러진 4월 3주차 조사(주중집계)에서 통합당이 29.5%, 국민의당이 4.2%의 지지율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합당은 대약진을 한 반면 국민의당은 오히려 지지세가 쪼그라들었다.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안 대표가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체급’을 낮춰 보수 단일 서울시장으로 나서며 통합당과 손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보수진영에서 대선주자로 나서기에는 개인 지지율이나 정치적 세력이 부족한 만큼 서울시장에 도전해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이다.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1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가 검토될 수 있다”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전에 이 의원이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두고 “가능성이 없다”고 했던 것에 비춰 보면 태도가 상당히 바뀐 것이다.
하지만 안 대표가 보수 단일 서울시장 후보가 되려면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지원 또는 암묵적 승인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애초 4월 재보궐선거를 준비하는 목적으로 비대위원장에 올랐는데 서울시장 후보를 공천하는 데 큰 권한과 역할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김 위원장이 안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관심에 가깝다.
김 위원장은 7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놓고 “또 나오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물론 통합당 안팎에서 안 대표가 나서면 보수진영의 서울시장후보 경선의 흥행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만약 안 대표가 보수 단일 서울시장후보 경선에 나선다면 통합당과 국민의당을 합당한 뒤 통합당 경선에 나서거나 국민의당 후보 자격으로 통합당의 후보와 경선을 치르는 두 가지 방법이 거론된다.
그런데 두 가지 시나리오에 모두 김 위원장의 뜻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안 대표가 통합당과 합당한 뒤 통합당 경선에 참여한다면 경선룰을 결정하는 일이 승부에 당락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인지도가 높은 안 대표는 일반투표 비중이 100%인 국민경선을 치르는 게 유리한 반면 기존 통합당 후보는 당원투표 비중이 높은 게 유리하다.
국민의당과 통합당의 합당을 결정하는 것이나 통합당의 경선룰을 결정하는 것 모두 김종인 위원장의 손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다.
안 대표가 국민의당 후보로 보수 단일후보 경선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렸다. 서로 다른 두 당이 경선을 치를지 여부를 결정하는 일도 결국 김 위원장의 뜻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지더라도 김 위원장의 결단에 안 대표의 앞날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안 대표 아닌 다른 인물을 서울시장 후보로 점찍어 두고 있다면 자칫 안 대표는 통합당 경선에 들러리로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안 대표는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문제를 두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경선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치적으로 회복이 쉽지 않은 상처를 입게 된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여전히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에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12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진행자가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묻자 “안 대표가 특정 자리보다는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와 관련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