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콜센터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적 정책인 비정규직 전환을 실현하려는 준비와 대책 마련이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 미흡하다는 말이 나온다.
27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위탁업체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 콜센터 직원 16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이 현재까지 마련되지 않았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은 올해 1분기에 파견 및 용역, 사내하도급 노동자 등 소속 외 인원 10명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만을 세웠지만 단 1명의 전환 실적도 내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정규직 전환 계획 인원은 2020년 1분기 말 기준 건강보험공단의 소속 외 인력으로 집계된 1600 여명 가운데 0.6%에 불과하지만 이마저도 달성하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소속 외 인력 1600여 명의 대부분은 콜센터 소속 직원들이다.
콜센터 소속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건강보험공단이 계획 조차 내놓지 못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규직 직원들의 반발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 정규직 직원들 사이에는 1600여 명에 이르는 콜센터 직원들이 건강보험공단의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인건비 예산을 함께 나눠야 하기 때문에 성과급 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퍼져있다.
건강보험공단의 한 직원은 “직원이 늘어나면 성과급 등이 줄어든다”며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의 특성상 예산은 한정적인데 콜센터 직원까지 정규직이 된다면 일반 정규직 직원들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 노조가 최근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 사업’ 조합원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직원들의 불만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콜센터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두고 노조원들의 반대 의견이 75.6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콜센터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의 불만이 최근에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건강보험공단이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콜센터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에 `부분별한 정규직 전환`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후 김 이사장은 콜센터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건강보험공단이 콜센터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보이는 소극적 행보는 국민연금공단과 대비된다.
국민연금공단은 2019년 콜센터 직원 387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콜센터뿐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도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노동계에서 나온다.
건강보험공단은 2019년 시설관리, 경비 등 용역근로자 62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정규직 전환대상인 비정규직 노동자 2360명 가운데 26%정도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공공기관 334개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이 결정된 인원은 모두 10만422명으로 이 가운데 85.4%인 8만4786명의 정규직 전환이 완료됐다.
국민연금공단과 같이 위탁업체를 통해 콜센터를 운영하던 국민연금공단은 콜센터 직원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1231명을 모두 국민연금공단의 정규직으로 전환해 '비정규직 제로'를 실현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은 2017년 11월 노사 및 전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포함된 전환협의회를 구성해 단계적으로 고용 절차를 밟아 대책을 마련했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은 기존 정규직 직원들과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직원들(공무직)의 인건비 예산을 별도로 분리해 기존 직원들의 반발을 최소화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공무직 직원들과 일반 정규직 직원들의 인건비 예산은 분리돼 있으며 각각 배정된 예산에서 급여와 성과급 등이 지급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들의 예산 편성방침이 다른 것을 두고 공공기관의 인건비 예산 편성은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정규직과 공무직의 인건비 예산 배정과 관련해서 따로 지침을 내린 바는 없다”며 “공공기관은 사업의 성격과 기관의 특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인건비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뿐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건강보험공단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내부제도 정비와 사내 여론 수렴 등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2019년에 노조와 사측, 관련 전문가 등이 모여서 콜센터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두고 논의를 한 적은 있다”면서도 “현재 콜센터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제로’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한 뒤 첫 외부 행사로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약속했을 정도로 강한 추진 의지를 보인 정책이다.
김 이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앞으로도 임금피크제, 고객센터 직원 고용 등 여러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모든 사안은 직원 여러분과 함께 논의하면서 최선의 해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