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가 푸르덴셜생명 인수가격을 더 낮출 여지가 있었음에도 이른바 ‘밀고 당기기’ 없이 계약까지 맺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KB금융지주는 푸르덴셜생명 인수후보 가운데 유일한 전략적투자자(SI)로 출발부터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윤종규 회장이 충분히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음에도 속전속결로 계약 체결까지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KB금융지주는 10일 푸르덴셜생명 지분 100%를 인수하는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보통 인수합병 거래 때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뒤 최종 실사와 추가 가격협상 등을 거치는데 KB금융지주와 매각자 측이 통상적 절차를 건너뛰고 직접 협의를 거쳐 곧바로 계약을 맺었다.
인수방식도 매매대금의 조정을 허용하지 않는 ‘Locked-box’(로크박스) 방식으로 이뤄졌다.
KB금융지주는 이런 방식으로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하면서 가격을 조정할 권한을 완전히 내려놓은 셈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인수합병시장에서는 흔하지 않은 방식”이라며 “우선협상대상자가 본격적 실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발채무가 드러날 가능성 등을 예상해 인수가격을 낮출 수 있는데 바로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한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수합병 과정에서 우발채무가 드러나고 이를 통해 최종 인수가격이 낮아지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인수자가 가격을 깎기 위해 우발채무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생명보험사들의 전망이 어두운 만큼 가격을 더 깎으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더 깎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매각자 측에서 ‘안전성’과 ‘빠른 거래 종결’에 방점을 찍었고 KB금융지주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거래가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지주가 빠르게 거래를 끝내겠다는 의사를 매각자 측에 여러 차례 전달하면서 신뢰를 준 것으로도 전해진다.
윤종규 회장이 가격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푸르덴셜생명의 가치에 확신을 지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회장에게 푸르덴셜생명이 그만큼 매력적 매물이었다는 의미다.
실제 윤 회장은 푸르덴셜생명을 놓고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윤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CEO레터를 통해 푸르덴셜생명이 장점이 많은 회사라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건전성과 효율적 손해율 관리역량, 최정예 설계사 조직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알짜배기 회사’라고 소개했다.
반면 윤 회장이 그만큼 조급했기 때문 아니겠냐는 시선도 나온다. 오랜 기간 생명보험사를 손꼽아 기다린 데다 우량한 매물이라고 판단한 만큼 ‘무조건 인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수합병에 참가했고 이 과정에서 협상의 주도권을 내준 것 아니냐는 얘기다.
연임과 연결지어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연임을 위해서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윤 회장이 그동안 여러 차례 공식석상에서 생명보험사를 인수하겠다고 밝혀왔던 만큼 푸르덴셜생명을 꼭 인수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연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KB금융지주 관계자는 “본입찰 이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받을 수 있는 실사자료를 인수에 참여한 모든 곳이 받았고 이를 토대로 모든 인수후보가 가격을 책정했다”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본실사를 하는 통상의 절차를 거쳤어도 가격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로크박스 방식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흔히 이뤄지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