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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에서 재벌로 전환한 박현주

최용혁 기자 yongayonga@businesspost.co.kr 2014-04-28 20: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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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펀드에서 재벌로 전환한 박현주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에게 4월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함께 찾아왔다.

좋은 소식은 박 회장의 미래에셋그룹이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재계 순위 29위. 샐러리맨 출신으로 쓴 ‘박현주 신화’가 재계 순위로 확인된 것이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몰락으로 샐러리맨으로 당대에 30대 그룹의 총수가 된 이는 박현주 회장이 유일하다.

나쁜 소식은 지금의 미래에셋그룹을 만들어 주고 ‘박현주 신화’를 탄생하게 해준 펀드시장에서 미래에셋이 삼성자산운용에게 밀려 2위로 내려앉은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박현주 펀드신화’가 끝나고 ‘박현주 재벌신화’가 시작했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다.

‘박현주 신화’는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재계순위 29위 만든 사업다각화

미래에셋그룹이 재계순위 29위(공기업 포함 38위)에 올랐다. 코오롱과 한국지엠, 한진중공업보다 높은 순위에 자리잡았다. 미래에셋그룹의 자산규모는 2010년 5조7천억 원(공기업 포함 48위)에서 2011년 6조6700억 원, 2012년 8조4천억 원으로 매년 성장하더니 2013년 9조7천억 원을 돌파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불과 3년 만에 자산 3조 원을 만들어냈다. 그 원동력은 부동산, 채권, 기업인수 등 다양한 분야를 향한 사업다각화다.

박 회장은 사업다각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11년부터다. 그는 당시 “미래에셋의 주식비중이 그동안 과도했다”며 “그동안 운용자산 중 주식비중이 과도해 사회 전체적으로나 미래에셋 자체로 보나 리스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주식비중을 충분히 낮췄다”며 “미래에셋은 자산을 다변화하는 것은 물론 운용방식도 바꿀 것”이라고 선언했다.

미래에셋그룹의 투자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기업인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1년 사모펀드를 운용하면서 골프브랜드 ‘타이틀리스트’로 유명한 어큐시네트를 6300억 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투자회사를 만들어 커피전문점 ‘커피빈’의 미국본사를 공동인수했다.


부동산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지난해 호주 시드니에 있는 포시즌 호텔을 3400억 원에 인수했다. 서울 광화문에 24층 규모의 호텔도 짓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채권시장도 다시보기 시작했다. 2011년 이후 미래에셋의 주식형펀드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해는 아예 채권전문가를 미래에셋증권에 앉혔다. 채권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변재상, 조한홍, 장부연을 각각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기업영업지원부문 대표, 트레이딩부문 대표에 선임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이 주식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한국채권연구원을 관계사로 둘 정도로 채권사업에 관심이 많다”며 “긴 안목에서 투자판단을 해 왔던 채권전문가들의 성향이 회사경영에도 적합하다는 판단이 작용하는 것 같다” 분석했다.


  펀드에서 재벌로 전환한 박현주  
▲ 미래에셋그룹의 자산총액은 2010년 이후 매년증가 해왔다.
박 회장은 해외투자도 멈추지 않고 있다. 2011년 캐나다 헤지펀드 운용사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호라이즌 베타프로’를 인수하고 이듬해 국내 최초로 중국에서 합작운용사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으로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사업다각화는 일단 성공이다. 재계순위 29위에 오른 것이 이를 말해준다. 미래에셋그룹의 신화를 세운 펀드 수탁액은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다양한 자산 투자방식으로 체질을 바꾸면서 이런 결과를 이뤄냈다. 미래에셋그룹 계열사는 현재 30개에 이른다.

◆ 펀드신화 무너뜨린 박현주의 몰빵

박 회장이 사업다각화를 고려한 것은 인사이트펀드를 실패하면서부터다. ‘중국몰빵펀드’라는 오명을 쓰고 수익액이 반토막 난 이후 주식 이외의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그룹을 세운지 10주년이 되던 지난 2007년 인사이트펀드를 만든다. 박 회장은 인사이트펀드를 시장에 내놓으며 “돈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하겠다”며 통찰력을 강조했다.

당시 박 회장의 명성은 욱일승천하고 있었다. 공격적 투자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서 “여의도 증권가에 미래에셋과 미래에셋을 따라하는 회사 둘 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인디펜던스펀드, 디스커버리펀드 등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새로 만든 펀드들이 줄줄이 성공하면서 인사이트펀드에 대한 기대도 높아만 갔다.

박 회장의 투자 선택은 중국이었다. 펀드 출시 당시 증시는 세계적 호황을 맞고 있었다. 특히 중국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중국증시도 덩달아 성장했다. 박 회장은 인사이트펀드로 수탁받은 금액을 중국에 집중투자 했다.


인사이트펀드가 출시되자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2008년 인사이트펀드의 수탁액만 4조 8천억 원에 이를 정도였다. 인사이트펀드는 투자금액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시장에서 일단 돈이 있으면 사야 되는 펀드라는 이야기도 오갔다. ‘묻지마펀드’라고도 불렸다.

박 회장은 당시 세계적 투자가 워렌 버핏과 상반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버핏은 급성장하는 중국증시를 보고 “거품이 낀 상태”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여전히 살 때”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전문가들은 중국증시가 활황임에도 버블이라고 말한다”며 “(적극적 투자선택을 하지 않은) 그들은 결과적으로 투자수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박 회장은 중국증시가 하락하자 인사이트펀드를 더욱 중국에 쏟아부었다. 당시 투자대상 상위 10개 종목 중 8개 회사가 중국 회사였다. 인사이트펀드 수탁액 중 76.5%가 중국과 홍콩에 투자됐다. 중국생명보험과 공상은행, 핑안보험 등 중국 금융주에 대한 투자가 많았으며 인터넷기업 및 에너지 관련 회사에도 투자도 있었다.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향후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갈 능력이 있다고 판단돼 중국에 대한 비중을 타 지역 대비 높게 유지해 왔다”며 “최근 반등시 중국시장의 탄력도가 가장 높았던 것은 주목할만 하고, 이는 기업가치 대비 주가의 할인 폭이 컸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올 글로벌 증시는 지난해보다 안정되고 지역간 차별적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며 중국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하지만 박 회장의 중국투자는 대실패로 끝났다. 인사이트펀드는 중국증시가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투자를 시작했다. 중국증시가 1년 만에 6000포인트에서 2000포인트로 폭락하자 수익률도 60%이상 떨어졌다. 당시 세계적 금융회사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한 것도 인사이트펀드를 무너뜨린 원인이다.


7년이 흐른 지금도 박 회장의 인사이트펀드는 아직까지 원금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 회장이 항상 강조하던 ‘역발상의 철학’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미래에셋의 모습에 대해 “박 회장의 투자는 도박같았다”며 “이전까지 호재가 따라 줘 투자에 성공했지만 글로벌 불황과 마주치면서 철저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 미래에셋그룹의 어두운 이면

미래에셋그룹은 빛나는 성장 만큼이나 어두운 구석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펀드시장에서 입지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공모펀드 설정액은 24조4천억 원이고 삼성자산운용은 22조7천억 원이다. 1위와 2위의 격차가 1조7천억 원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4분기 두 펀드가 4조7천억 원 가량 차이가 났는데 3조 가량 줄어든 것이다.

  펀드에서 재벌로 전환한 박현주  
▲ 구재상 K클라비스 투자자문사 대표이사
미래에셋그룹은 사업다각화에 성공했지만 “금융그룹이 맞냐”는 조롱도 나온다. 골프장을 운영하고 호텔을 짓고 커피빈을 인수하는 등 여느 재벌과 다름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의 경우 미래에셋그룹이 직접소유하고 있다. 더욱이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이 해외부동산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서 “업종을 변경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듣는다.

미래에셋그룹은 2011년과 2012년 두차례에 걸쳐 매우 급진적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지점을 118개에서 78개로 줄였고 직원도 400명 가량 내보냈다.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어느 금융회사보다 앞서 실시했고 그 토대 위에서 지금 수익을 내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선견지명’이라는 칭송도 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셋 성장의 성과를 나누지 않고 고통분담만 강요했다’는 비난도 받는다.

특히 창업 공신들의 이탈은 박 회장에게 큰 상처다. 박 회장이 주식보다 채권, 부동산 등 다른 투자처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창업 당시 함께했던 인물들이 빠져나갔다. 구재상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이 이탈했다. 박 회장과 구 전 부회장은 투자를 놓고 의견 충돌을 빚었고, 결국 구 전 부회장이 2012년 10월 회사를 나갔다는 후문이다. 윤진홍 전 미래에셋 부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물러났다.

선경래 지앤지인베스트 대표, 김태우 피델리티자산운용 전무, 박건여 브레인자산운용 대표, 서재형 대신자산운용 대표 등도 두 부회장보다 먼저 미래에셋그룹을 이탈했다. 지금은 박 회장의 창업공신 가운데 최현만 수석부회장만 남았다. 창업공신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펀드 수탁액이 이동했다는 말도 나온다.


◆ 역발상으로 이룬 박현주 신화

박 회장은 주식으로 신화를 일궜다. 박 회장은 특히 주식 투자에서 “소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했다. 매번 남과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이 ‘박현주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박 회장의 역발상은 동원증권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다. 당시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잦은 매매를 진행하던 영업맨들과 달리 박 회장은 수익률에 승부를 걸었다. 수익률이 좋으면 고객은 자연스레 더 많은 돈을 맡기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박 회장은 전국 1위 증권사 영업맨이 될 수 있었다.


  펀드에서 재벌로 전환한 박현주  
▲ 박현주 회장이 2008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당선인 초청 금융인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그 뒤 박 회장은 동원증권에서 함께 일하던 구재상 전 부회장, 최현만 수석부회장 등과 함께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했다. 박 회장이 회사를 설립하던 당시 경제는 외환위기 상황이었다.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많은 회사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고 도산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한국 증시는 비관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위기를 기회삼아 수익을 냈다. 외환위기로 금리가 30%까지 치솟자 박 회장은 채권을 200억 원 가량 사들여 50억 원 가까이 이익을 본다. 이밖에도 ‘박현주 1호 펀드’를 만들어 높은 수익을 내기도 했다. 당시 박 회장은 조선업, 중공업 등 제조업이 저평가 되었다고 보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대규모 적자를 보이고 있는 조선업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결과 박 회장의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엄청난 성과를 이룬다. 미래에셋펀드는 수익률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져나가면서 외환위기 속에서도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해 자산운용과 증권업이라는 두 날개를 달게 된다.

2000년 이후 국내 경제가 외환위기의 그림자를 벗어나면서 국내증시도 회복세를 보였다. 미래에셋그룹도 이와 함께 성장했다. 2002년 미래에셋증권 금융상품의 총 판매액이 4조 원을 돌파하고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투자신탁(2006년 자산운용과 합병)의 수직상승세를 보이며 1위를 굳건히 했다.

물론 박 회장의 역발상이 환경과 맞아떨어져 성과를 냈을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외환위기를 졸업하면서 시중에 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많아졌을 때 박 회장의 미래에셋펀드가 절묘하게 그 틈을 찾아 들어갔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시절 애국심에 호소하던 바이코리아펀드도 박현주 펀드의 수익률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제2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번져나갔던 바이코리아 펀드는 1999년 당시 출시 4개월 만에 10조 원의 자금을 끌어 들였다. 박 회장도 “현대증권이 바이코리아 펀드를 공격적으로 팔아 정신없이 주식을 사주었다”며 “그 덕에 뮤추얼 펀드인 박현주 1호가 시판된 지 3개월 만에 수익을 크게 냈다”고 돌아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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