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 미달의 낙하산이라 말씀하셨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해서 (IBK기업은행을) 잘 키우도록 하겠다."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임기 첫 날인 3일 기업은행 본점으로 출근하면서 노조원들이 입구를 막고 사퇴를 요구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관료 출신 인사의 행장 선임을 계속 반대해온 만큼 이날 윤 행장의 출근을 저지한 것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윤 행장은 "(노조와) 잘 듣고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행선지를 돌렸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로 정부의 뜻이 온전히 반영된다.
청와대가 오랜 고심 끝에 윤 행장을 임명한 만큼 결정을 되돌릴 가능성은 낮다.
IBK기업은행과 계열사 출신 내부 경영진과 반장식 전 일자리수석 등도 후보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행장 임명이 예상보다 늦춰진 끝에
문재인 정부 경제수석을 지낸 윤 행장이 선택됐다.
노조와 일부 정치권의 반발에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하려면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은행장에 정부와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2020년 경제정책 중점 추진과제로 모험자본 공급 활성화를 제시하고 기술력을 갖춘 우수한 중소기업에 금융권의 자금 공급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중소기업 지원 강화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고 일본 수출규제 등에 대응해 국가 경쟁력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에 몰리고 있는 금융권의 자금흐름이 신생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물꼬를 트면 정부가 최우선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에 힘을 보탤 가능성도 높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위험성이 높은 모험자본 분야로 단기간에 자금 공급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부와 금융당국에 쉽지 않은 과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책은행이자 중소기업 자금지원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은행이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발맞춰 선례를 보인다면 다른 금융회사의 참여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이런 효과를 노려 강한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윤 행장 임명을 강행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관료를 지낸 인사를 국가기관이나 국책은행 수장에 앉히는 것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고
문재인 정부의 인사기조에도 어긋난다. 그런 점에서 윤 행장 선임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정부가 경제정책에 강한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윤 행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보좌관실과 대통령 비서실을 거쳤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냈던 만큼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만 일했던 반장식 전 수석이 기업은행장 유력후보로 거명됐지만 임명되지 않은 것은 청와대가 이런 점을 염두에 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기업은행에서 최근 약 10년동안 내부출신 경영자만이 행장에 올랐다는 점도 외부출신 인사를 통한 조직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에 무게를 실었을 가능성도 있다.
윤 행장은 기획재정부 산업경제과장과 경제정책국장,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와 청와대 경제수석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기업은행 노조는 윤 행장이 금융회사 경영에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가장 큰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책금융과 거시경제분야에서는 윤 행장의 전문성이 나타날 공산이 크다.
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내부 출신 행장과 외부 출신은 각각 장단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외부 출신 행장 선임도 오실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윤 행장은 노조 반발과 내부 경영진 중심의 조직문화 등 걸림돌을 넘고 기업은행이 정부 정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춰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윤 행장이 이른 시일에 기업은행에 대규모 조직개편을 실시하며 모험자본 공급과 중소기업 지원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체질 개선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행은 윤 행장 취임을 알리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뿌리가 되는 포용경제와 혁신금융에 이해도가 높아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기업은행의 핵심역할을 발전시킬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