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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취임 조건 이제 다 갖췄나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5-07-17 1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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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취임 조건 이제 다 갖췄나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그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싸움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뒀다.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 합병안이 통과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발표된 지 53일만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승리로 삼성전자 회장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간접적이지만 어느 정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최대 걸림돌로 꼽혀왔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상처 또한 적지 않게 입었다. 일각에서 상처를 안은 영광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 삼성그룹이 그토록 바라던 ‘부드러운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조건은 아직 미완성이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어떻게 물려받을 것인지 명확한 계획을 내놓을 것을 요구받고 있다. 물론 삼성그룹 측은 내야 할 세금을 정정당당하게 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미흡해 보인다.

이 부회장은 또 삼성전자의 부진한 경영실적을 정상궤도로 올려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확인된 ‘안티 삼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 이재용, 혈투 끝에 가까스로 승인받아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 합병안이 승인됐다.

발행주식 83.57%가 참석했고 69.53%가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제일모직 역시 이날 임시 주총을 열어 삼성물산과 합병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두 회사는 9월1일자로 합쳐지게 된다. 합병법인의 이름은 삼성물산이다. 앞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와 채권자 이의제출 절차 등이 남아있다. 신주상장은 9월15일 이뤄진다.

이재용 부회장은 초박빙의 혈투를 벌인 끝에 승리를 얻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날 주표 대결 전 “삼성이 이기겠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삼성그룹이 2년여간 많은 준비를 했는데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소액주주가 얘기한대로 6개월이나 1년 연기해서 합병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합병안이 통과되면서 삼성그룹의 이재용 체제는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삼성그룹이 두 회사 합병을 통해 노린 것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확보였다. 이건희 회장 일가가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5%에도 못 미친다.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0.57%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지 않고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기 어렵다. 이런 취약한 지배구조는 합병이 추진된 목적인 동시에 엘리엇매니지먼트에게 공세의 빌미를 제공한 원인이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앞세워 삼성전자에 지배력을 확보하려 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다.

합병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는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 전체 지배력을 높이는 동시에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 또한 단순해진다.

삼성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는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 제일모직'에서 '삼성물산 → 삼성생명·삼성전자'로 바뀌게 된다. 합병 삼성물산은 실질적으로 지주회사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재편도 막바지에 들어서게 됐다.

삼성물산 합병을 놓고 벌어진 찬반공방이 두 회사 주주들에게도 실질적 이익을 줄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번 사태는 삼성그룹이 주주와 소통을 늘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경영진은 긴급 기업설명회를 열어 주주친화정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거버넌스위원회 설치와 CSR전담조직 구성을 통해 인수합병 등 주주권익에 직접 영향를 미치는 사안에서 주주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겠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취임 조건 이제 다 갖췄나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2015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 삼성그룹 회장 취임 위해 남은 조건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승계를 위해 큰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이재용 체제를 개막하기까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우선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앞으로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17일 주총 결과 발표 뒤 보도자료를 내 “수많은 독립주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져 실망스럽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추가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다. 싸움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어떤 식으로 반격에 나설지 현재로서 알 수 없으나 삼성그룹과 이 부회장 입장에서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은 삼성그룹에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확보하는 일도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간접적 지배력은 확대했으나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이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 등 삼성그룹 지분을 물려받으려면 최소 6조 원 이상의 상속증여세를 낼 돈을 마련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올해 안에 삼성전자 회장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부회장은 이미 이건희 회장이 맡고 있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물론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회장 취임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삼성그룹 내부에서 이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에 올라 경영권을 승계하기에 앞서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어떻게 물려받을 것인지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정정당당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

또 삼성전자의 경영실적도 개선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2분기 6조9천억의 잠정 영업이익을 내놓았다. 이는 시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사업의 부진으로 3분기 경영실적에 대한 눈높이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어떻게 끌고갈 것인지 청사진 제시를 요구받고 있다.

◆ 이재용 리더십, 안티 삼성 극복할까

이 부회장 앞에 놓인 또 다른 난제는 이번 사태로 불거진 국내외 ‘안티 삼성’ 이미지를 극복하는 일이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3일 국민연금의 합병찬성 결정을 비판하며 “합병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목적과 달리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 승계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 모든 상황은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재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 8~10일 사흘간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찬성은 44.3%, 반대는 42.5%였다.

그런데 이번 합병의 목적이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은 27.5%에 그쳤고,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63.2%에 이르렀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물려받기 위해 삼성그룹이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시각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재용 체제의 개막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얻기 위한 삼성그룹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이런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물산 승계과정에서 언제든지 이번 엘리엇매니지먼트 사태 같은 복병을 만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취임 조건 이제 다 갖췄나  
▲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에서 투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 글로벌 삼성, 진흙탕 싸움에 민낯 드러나


삼성그룹은 그동안 엘리엇매니지먼트와 혈투를 치렀다. 그 과정에서 삼성그룹이 안고 있는 민낯도 드러났다. 명분과 실리를 따져보자면 반쪽짜리 승리에 가깝다.

애초 합병을 놓고 벌어진 논란은 합병비율이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저평가를 이유로 합병비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의도적으로 주가를 관리해 왔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합병비율에 대한 불공정성 논란은 합병시점에 대한 문제로 이어졌다. 하필 왜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은 상태에서 합병을 추진하느냐는 의구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는 의견이 설득력있게 제기됐다. 엘리엇매니지먼트뿐 아니라 삼성물산 일부 소액주주들도 합병반대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은 이번 합병을 둘러싼 공방전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관리의 삼성’이란 명성을 의심케 하는 주먹구구식 대응이 여러 차례 눈에 띄었다. ‘삼성이 하면 다 된다’는 믿음에도 의문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삼성물산은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공세가 시작되자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자사주 전량을 KCC에 처분하는 초강수를 뒀다. 삼성그룹이 계열사 자사주 전량을 처분하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삼성물산은 외국인 지분이 33.53%에 이른다. 그러나 합병과정에서 삼성그룹의 전략은 ‘글로벌 삼성’다운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삼성그룹은 주주들이 합병을 반대하고 일어서자 발등의 불을 끄기에 바빴다. 뒤늦게 거버넌스위원회 설치, 배당확대, 바이오사업을 통한 비전 등을 내놓으며 성난 주주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안간힘을 썼다.

◆ ‘어려운 사냥터’, 애국주의로 맞서다

삼성물산 합병을 놓고 53일 동안 펼쳐진 전쟁은 삼성그룹이 자초한 것이다.

삼성그룹은 엘리엇매니지먼트와 법적 공방과 여론전 등이 치열해지자 해외 ‘먹튀’에 대항하는 애국주의로 사태를 몰아갔다. 합병 찬반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내부논의를 거쳐 찬성표를 던지기로 결정한 것도 사실상 이런 여론에 힘입은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5일 칼럼에서 한국이 해외 행동주의 투자자들에게 어려운 사냥터라고 표현했다.

삼성물산과 한국언론들이 해외펀드의 합병반대에 대해 단기이익을 노리는 공격이라고 비난하고 삼성의 경영안정화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합병논란이 커지면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관심도 집중됐다. 해외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국내언론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사업 시너지를 위한 합병추진이 아니라 이 부회장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 목적이라는 시각이 쏟아졌다.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 등 해외 자문기관들이 잇따라 합병반대 의견을 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주주가치를 훼손한 불공정한 합병이라는 지적이었다.

삼성그룹은 여론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감행했다. 삼성물산은 주총이 임박하면서 주주들에게 찬성을 호소하는 광고물량 공세로 읍소작전을 벌였다. 또 임직원들이 업무를 전폐하고 주주들 집까지 찾아다니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물산 직원이 수박까지 돌리며 주주들을 대상으로 구애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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