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한 최대 92억 원가량의 손해배상 소송은 노조 간부들이나 조합원에 경제적 위협을 주는 강도높은 조치라는 점에서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한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전임 강환구 사장 시절의 노조활동 개입 문제를 두고 직접 사과하는 등 노사 협력관계를 다지는 데 힘써왔는데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부당하게 입은 피해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전하는 것은 정상적 경영행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조치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울산본부와 울산인권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20여곳이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손해배상 소송과 재산가압류 신청을 남용하는 것은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김종훈 민중당 국회의원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현대중공업이 노사 교섭 중에도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로 노조를 탄압하고 있어 교섭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 사장이 노조의 ‘탈선’을 빌미로 임단협에 쓸 협상카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 사장은 현대중공업의 경영 정상화 고삐를 죄야 하는데 법적 공세를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노사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런 선택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사교섭이 본궤도에 들어선 만큼 한 사장으로서도 협상카드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앞서 18일 진행된 교섭에서 노조는 사측에 임금협상안의 제시를 요구했다. 노조는 이미 기본급 12만3526원 인상(호봉승급분은 별도), 성과급 최소 250%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18년 임단협 합의안인 기본급 4만5천 원(호봉승급분 2만3천 원 포함) 인상, 성과급 110%, 격려금 100%+300만 원과 비교하면 인상 요구폭이 매우 크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강도높은 비용 절감정책이 추진되는 상황이라 한 사장은 노조의 요구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올해 수주현황을 감안하면 한 사장이 노조의 요구안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
현대중공업은 상반기까지 22억 달러치의 선박을 수주해 2019년 수주목표 117억 달러의 18.8%만을 채웠을 뿐이다. 현대중공업이 올해 수주목표를 달성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조선업계는 바라본다.
한 사장이 노조를 상대로 강도 높은 법적 조치를 이어가는 이유로 협상카드를 넘어 또 다른 효과도 노리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번 법적 조치가 현대중공업이 사운을 걸고 추진 중인 대우조선해양과의 인수합병에 노조가 더 이상 반대행동을 못하도록 하는 경고카드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을 위한 기업결합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중국 심사당국에 기업결합심사 신청서를 제출했고 유럽연합과는 사전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노조가 금속노조 차원에서 국제제조산업노조와 연계해 기업결합심사를 막겠다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어 한 사장으로서는 노조가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이참에 분명히 선을 그어둘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앞서 23일 현대중공업은 5월31일 임시 주주총회를 전후로 노조가 회사에 주총장 파손과 생산활동 방해 등 손해를 끼쳤다며 노조에 최대 92억 원 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된 30억 원을 놓고 우선 소장을 제출했다.
법원은 지난 11일부터 19일까지 현대중공업이 박근태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과 간부 9명을 상대로 낸 재산가압류 신청도 받아들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불법 행위와 관련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원칙을 유지할 것”이라며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나머지 피해액과 관련한 소송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