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경솔한 행정처분으로 병원과 환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
26일 여의도성모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병원 측은 보건복지부에 과징금과 영업정지 일부를 변경해서 이행해도 되는지 수차례 질의해 승인을 얻었는데 뒤늦게 다른 처분을 받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백혈병 환자 진료비 부당청구건'과 관련해 의료급여 부분은 영업정지로, 건강보험 부분은 과징금으로 행정처분을 이행해도 되냐고 보건복지부에 수차례 질의했고 보건복지부는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 의료급여 환자를 건강보험 환자와 차별적으로 진료하는 것이냐”는 항의가 거세지자 보건복지부는 20일 여의도성모병원의 의료급여 부분에도 과징금을 재처분했다.
의료급여제도는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의 의료를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보건복지부가 책임감 없는 행정처분을 내려 혼란을 가중시켰다”며 “이미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은 보건복지부의 차별적 행정처분으로 상처를 입었다”고 반발했다.
행정처분은 국민의 권리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행정부처의 행정행위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한 고려 없이 손바닥 뒤집듯 행정처분을 변경하며 업무에 큰 혼선을 주고 국민들에게 아픔까지 선사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2006년 감염 우려를 이유로 백혈병 환자 골수검사에 1회용 바늘을 사용했다가 임의비급여 행위로 지적돼 소송을 당했다.
2019년 3월 보건복지부는 여의도성모병원에 의료급여 업무정지 47일과 건강보험 업무정지 35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여의도성모병원은 관련 법에서 업무정지와 과징금 납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조항을 찾아냈다. 병원이 오랫동안 영업정지로 환자를 못받는 것이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다.
병원은 건강보험 부분은 과징금으로 납부해도 되겠냐고 보건복지부에 질의했고 보건복지부가 이를 승인했다.
의료급여 부분은 영업정지 처분을 변경없이 이행하기로 했다. 과징금 낸 건강보험 환자는 진료할 수 있고 영업정지에 해당하는 의료급여 환자는 진료하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여의도성모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는 과징금까지 내면서 받아들이고 의료급여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버리는 차별적 진료를 했다는 민원이 국회에 제기되고 관련 보도까지 나오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랴부랴 여의도성모병원에 의료급여 부분도 과징금으로 처리하라고 통보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내린 행정처분이 의료급여 환자에게 가슴아픈 차별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을 생각도 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외양간을 고친 격이다.
물론 법적으로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행정처분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보건복지부가 행정처분의 법적 타당성외에 처분에 따른 영향까지 면밀히 살폈다면 이번 사태처럼 오락가락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덕분에 여의도성모병원도 과징금 45억 원을 내면서도 ‘돈만 밝히는 병원’이라는 오명을 떠안았다.
여의도성모병원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며 “환자들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논의를 거쳐 대안들을 마련하고 보건복지부에도 수차례 질의했던 것인데 보건복지부가 손바닥 뒤집듯 행정처분을 바꿔버리니 병원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고 말했다.
여의도성모병원은 507명의 의료급여 환자들 가운데 중증환자들은 병원의 자선기금을 이용해 업무정지기간에 무상진료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급여 환자들은 차별적 영업정지 소식을 듣고 그동안 내원하던 병원으로부터 돈이 없어 차별받는다는 기분에 큰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역 커뮤니티에는 여의도성모병원 진료 대기실에서 한 의료급여 환자가 전화통화를 하며 “돈이 없는 사람은 진료도 안 해 준다고 한다”며 서러움을 토로하는 것을 봤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른 글에서는 “의료기관은 생명과 직결돼 있는 것인데 이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를 보건복지부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공익적 차원에서 앞서 내린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하고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고 재처분 경위를 밝혔을 뿐 행정처분이 경솔했음을 사과하지는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이번 사태에서의 실수를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백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