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자본증권의 성격과 구조. < DB금융투자> |
금융회사들이 주요 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해오던 신종자본증권의 성격이 자본에서 부채로 바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의 전개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을 부채로 인식하게 되면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계획을 세우는 것과 동시에 줄어드는 자본을 메우기 위한 새 자금 조달방식을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를 비롯해 국내 금융회사 상당수는 인수합병 자금 마련 및 회계기준(IFRS) 변경 등에 대비해 최근 신종자본증권 발행규모를 키웠다.
신종자본증권은 법적으로는 채권으로 분류되지만 만기가 없는 영구채 형태로 발행돼 지금까지 회계기준에서는 자본으로 인정되는 금융상품이다.
원금을 갚지 않고 일정 이자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에 채권의 특징과 주식의 특징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채권’으로도 불린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금융상품을 계약내용의 실질에 따라 자본과 부채로 분류하는데 신종자본증권은 발행자가 원하면 원금과 이자의 지급시점을 미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본으로 분류됐다.
2003년 5월 외환은행이 신종자본증권을 처음 발행한 뒤 국내 은행 및 금융회사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왔으며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더욱 가속화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은 5조6천억 원으로 2017년보다 46% 불었다.
지난해에 이어 2019년에도 KB금융지주, JB금융지주, 우리은행,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각각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기자본을 불렸다.
최근 수년 동안 금융회사들이 4차산업혁명 등 새로운 영업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새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한 인수합병 및 신사업 진출 등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자금을 확보하고 동시에 자기자본비율도 관리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보험관련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본 확충이 급한 보험사들도 신종자본증권 발행규모를 급격히 키웠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들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규모는 3조9265억 원으로 자기자본의 13.2%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금융상품의 표시 회계기준(IAS32) 개정작업을 진행하면서 신종자본증권과 관련해 발행자가 갚아야하는 원금과 이자가 모두 확정된 금액이기 때문에 부채로 분류해야 한다고 봤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각국 금융당국의 의견을 수합하고 있는데 금융감독원도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 영구채를 부채로 봐야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기업평가는 “부채와 자본 분류 원칙이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확정되면 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부채로 분류돼 발행기업들의 부채비율, 레버리지비율 등 재무 건전성 지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레버리지비율 규제가 적용되는 금융기업들은 자본 적정성 관리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이 아닌 부채로 분류되면 금융회사들의 부채비율은 88%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금융회사들로선 각종 자본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자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자본을 늘렸는데 오히려 부채를 늘려버린 셈이 된다.
물론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는 최소 2~3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15년여 이상 신종자본증권을 자금 조달수단으로 활용해온 금융회사들로선 자금 조달계획을 다시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신종자본증권을 부채로 인식해야한다는 신호가 나오면 이를 조기 상환하는 것과 동시에 사라지는 자본을 메우기 위한 새 자금 조달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사업 등 절실한 자금 수요을 해결할 자금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남은 시간이 결코 여유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회계기준이 바뀌더라도 신종자본증권의 구체적 형태에 따라 부채나 자본으로 분류되는 것이 다를 수 있고 최종 결론이 내려지고 그에 따른 적용 유예기간도 통상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비할 시간은 있다”며 “다만 자금 조달계획은 중장기적 호흡으로 진행되는 만큼 해당 문제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