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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세월호1주기 현안점검회의에 참석해 보고받고 있다. <뉴시스> |
박근혜 대통령은 대권을 쥘 운을 타고 났지만 천하의 재상을 만날 운은 지지리도 없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태를 맞아 위기에 처했다. 세월호 사태에서 겨우 벗어나려는 순간 이번에 성완종 리스트에 직면해 이완구 국무총리를 잃을 위기에 몰렸다.
박 대통령에게 이완구 총리는 세월호 사태로 상실한 국정동력을 다시 회복할 카드였다. 이 총리는 정치력과 행정력을 두루 갖춰 박 대통령의 하반기 국정운영을 지원해 줄 최적의 인물로 꼽혔다.
박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병영기피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 온갖 논란이 나왔는데도 이 총리 카드를 밀어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다시 총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 총리를 내치고 새로운 총리를 물색하든 이 총리를 계속 안고 가든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정권의 레임덕을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세월호1주기 현안점검 회의에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수사과정에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는데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우리 정치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친박 게이트와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확대되는 현상황을 정치권 전체의 문제로 국면을 전환하려는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모두의 문제가 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된다. 이 총리의 거취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그만큼 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와대는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4일 “검찰수사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 총리의 직무정지나 해임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각에서 지금 당장은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앞두고 있어 이 총리에 대한 결단을 내리기 어렵지만 27일 귀국 때까지 이 총리 논란이 계속 될 경우 결국 이 총리를 물러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에게 이 총리는 세월호 사태와 비선실세 파동 등에서 힘을 잃은 국정동력을 회복할 회심의 카드였다.
이 총리는 이런 박 대통령의 기대에 걸맞게 총리에 취임하자 곧바로 반부패전쟁을 선언하며 박 대통령의 정국장악을 위한 칼날이 됐다.
검찰이 기업을 겨냥해 비리수사를 확대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올랐다. 박근혜 정부는 이 기세를 몰아 노동시장 구조개혁, 연금개혁, 경제활성화 정책 등 묵은 과제들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성완종 리스트는 이완구 총리를 비롯해 친박실세를 겨누었다. 박 대통령으로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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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구 국무총리 |
◆ 박근혜의 위기, 결국 인사의 실패
박 대통령은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완구 총리 카드도 장고 끝에 꺼내든 카드였다.
정치권 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총리 인사로 이번 사태를 극복하려고 결심하더라도 인물난에 더욱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총리나 비서실장 등 이른바 권력의 핵심을 선택할 때 인물을 가려왔다.
총리후보를 지명할 때 애써 정치인을 피하려고 했다. 김무성 대표,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 등이 정홍원 후임 총리로 거명됐지만 권력을 나눌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기춘 비서실장 후임도 결국 이병기 국정원장을 선택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 속 인물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말이 나왔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는 인적쇄신의 실패라고 지적한다.
박 대통령은 정부출범 때부터 인사실패에 발목이 잡혔다. 박 대통령이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인사청문회도 하기 전에 부동산투기 의혹으로 자진사퇴했다.
그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와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도 낙마하면서 박 대통령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꿴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의 인사실패는 계속 됐다. 박 대통령은 ‘수첩인사’, ‘불통인사’라는 말을 들으면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선임했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은 미국 출장길에서 성추행사건을 일으켜 물의를 빚었다.
박 대통령 인사실패의 정점은 지난해 세월호 정국에서 보여준 정홍원 총리의 후임총리 지명 사태였다. 박 대통령은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으나 둘 다 낙마하고 말았다.
안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논란으로, 문 전 주필은 역사관 논란으로 자진사퇴했다. 두 번이나 총리인선에 실패하자 박 대통령은 결국 정 전 총리를 유임시켰다. 정 전 총리는 사실상 식물총리였다.
이번에 이완구 총리가 사퇴할 경우 박 대통령이 총리 또는 후보로 내세운 5명 가운데 4명이 스스로 물러나는 비극적 상황을 맞게 된다. 박 대통령의 총리인선 성공률이 고작 20%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인사실패를 거듭했고 결국 인사에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특히 이번에도 박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 2명이나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측근 중에서도 손꼽히는 측근이다. 이들이 만약 성 전 회장으로부터 자금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파장은 이 총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박 대통령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김 전 비서실장은 이례적으로 라디오 인터뷰 등에 응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성완종 리스트는 조작”이라며 “검찰조사에 협조해 누명을 벗을 것”이라고 밝혔다.
허 전 비서실장은 10일 이후 지방에서 잠행중이다. 허 전 비서실장은 검찰 소환조사에 대비해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받은 것으로 돼 있는 허 전 비서실장이 잠적하면서 의혹을 키우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실패에 대한 경고는 그동안 수 차례 거듭됐다. 박 대통령의 인사실패는 이번에 상상하지 못할 악재로 돌아왔다. 박 대통령은 또 다시 인사선택의 기로에 섰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