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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자격 갖췄나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5-04-13 16: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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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자격 갖췄나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왼쪽)이 지난 3일 중국 허베이성 창저우시에서 열린 '북경현대 창저우 공장 기공식'에 참석해 제막을 하고 있다.<뉴시스>

‘F세대’. 재계에서 적극적 경영행보를 보이고 있는 국내 주요기업의 40대(Forties) 3·4세 경영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조현준 효성 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이 대표주자로 꼽힌다.

재계 순위만 놓고 보면 정의선 부회장은 이들 'F5' 가운데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가장 앞줄에 자리잡고 있다.

정 부회장은 1968년생인 이재용 부회장보다 2살 아래다. 정 부회장은 사석에서 이 부회장을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상당히 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각각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3세이자 외아들로서 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재벌가 2~3세에 대한 경영능력 검증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거대한 그룹을 이끌 후계자로서 리더십과 경영능력뿐 아니라 평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국내 재벌기업의 특성상 기업 정체성인 CI(CI:corporate identity)는 오너나 최고경영자의 정체성을 뜻하는 PI(President Identity)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경영권 승계작업이 진행될 경우 후계자의 이미지나 평판은 단순히 지분가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의선 부회장은 어떤 이미지와 평판을 쌓았을까?

◆ 달라진 정의선, ‘속도’와 ‘기적’을 주문하다

정 부회장은 3일 중국 창저우시 4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은 열흘 뒤 미국으로 출장을 떠났다. 부자가 나란히 글로벌 자동차시장의 양대 격전지를 직접 방문해 현장경영에 나섰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적지 않다.

정 부회장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몽구 회장을 조용히 수행하며 그림자 행보를 펼쳤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물밑작업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 부회장도 자기색깔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들어 경영 전면에서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참석해 현대차의 미래를 직접 프리젠테이션했다. 정 부회장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현대차그룹의 젊은 후계자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 부회장은 중국 창저우 4공장 기공식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번 공장설립을 계기로 그동안 중국 파트너들과 이루어 왔던 ‘현대 속도’와 ‘현대 기적’을 다시 쓰려고 한다.”

속도나 기적 같은 말은 정 부회장이 잘 쓸 법하지 않는 수사다. 그를 입사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지켜 본 이들은 정 부회장이 대체로 과묵하고 소탈하며 합리적이라고 전한다.

정몽구 회장이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는 반면 정 부회장은 우회적 화법을 즐기는 편이다. 정 부회장은 해외 모터쇼에서 현지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으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되묻는다.

속도는 정몽구 회장, 기적은 정주영 창업자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그런 점에서 정 부회장이 현대차의 미래를 좌우할 중국사업 확대에 나서며 속도와 기적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정 부회장이 선대의 경영 마인드를 앞세워 현대가의 적통을 잇는 장자로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뜻도 담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자격 갖췄나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2011년  1월10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인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뉴시스>

◆ 정의선, 후계자로서 디자인하다


정몽구 회장이 우직하고 저돌적인 ‘뚝심경영’을 보였다면 정 부회장은 젊고 세련된 ‘디자인 경영’을 추구해왔다.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은 알려진 것처럼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부사장으로 영입해 기아차 K시리즈 돌풍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 부회장은 디자인 경영을 산업적 차원보다 조직관리와 기업 이미지 관리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젊고 산뜻하며 세련된 브랜드 이미지를 현대기아차에 입히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1월 가전 전시회인 CES와 디트로이트 모터쇼, 미국프로골프(PGA) 타이틀 스폰서십 등에 연달아 참석했다. 정 부회장이 글로벌 보폭을 넓히며 현장과 스킨십을 늘리고 소통에 앞장서는 것도 디자인 경영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정 부회장의 부상은 현대차그룹 조직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는 이달부터 2015년 온라인 광고 제작과 활동 등을 담당할 전문 광고대행사를 선발해 광고 일감을 맡기기로 했다.

그동안 현대기아차의 광고는 현대차그룹의 광고계열사인 이노션이 독차지했다. 현대차가 공개모집을 통해 광고대행사를 선발하는 것은 처음으로 업계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정 부회장이 추구하는 차별화 마케팅 전략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은 미국 타임스퀘어에 현대 옥외 광고판을 설치하거나 스마트폰을 연결해 게임하는 ‘현대레이싱 런칭’ 이벤트 등 마케팅에 혁신을 불어넣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지금까지 현대기아차의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높이는데 집중해 판매대수 800만대 돌파하는 등 외형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반면 정의선 부회장은 소비자들이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라는 브랜드 때문에 1천만 원을 더 지불하는 것처럼 현대차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 조현문도 호평한 정의선

정 부회장의 경영행보는 F세대 경영인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개혁연구소와 KBS는 최근 공동으로 재벌 3·4세 경영능력을 평가해 발표했다. 대학교수, 민간연구소 전문가, 자본시장 펀드매니저, 증권분석가 등 전문가 50명의 설문조사에서 정 부회장은 경영승계 과정에 대해 여느 재벌 후계자들과 마찬가지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경영능력 점수에서 대상에 오른 재벌3~4세 11인 가운데 상위권에 들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에 이어 3위에 올라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얻은 것이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는 지난해 8월 아버지는 물론이고 형인 조현준 효성 사장 등을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발해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조 변호사는 효성가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국내 재벌기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재벌 3세들은 별나라에 사는 황태자다. 선악이나 질서는 남들 얘기일 뿐이다. 내가 곧 법이라고 생각한다. 회삿돈과 내 돈을 구분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재벌3세들이 총수를 맡는 재벌체제는 미래가 없다.” 조 변호사는 재벌3세들에 대해 이렇게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조 변호사조차도 정의선 부회장을 호평했다. 그는 “정 부회장은 경영자로서 제대로 훈련을 받고, 겸손하며, (경영능력을) 검증까지 받았다”고 평가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자격 갖췄나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4주기를 하루 앞두고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생전 자택에서 열리는 제사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 양반집 이미지 정의선, 사회적 존경도 받을까

정 부회장은 1999년 현대차에 자재본부 이사로 입사해 경영에 나선지 올해로 16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는 2001년 초 상무로 승진해 구매실장을 맡았고 2002년 초 전무로 승진해 국내 영업본무 영업담당과 기획총괄본부 기획담당으로 재직했다.

정 부회장은 2002년 하반기부터 현대캐피탈 전무를 겸임하며 금융분야까지 발을 넓혔다. 그는 2005년 기아차 사장, 현대자동차그룹 기획총괄본부 사장, 현대모비스 사장을 겸임했고, 2009년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등 차근차근 성장했다.

정 부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현대그룹 창업자이자 조부인 정주영 회장과 일대일 맞상으로 식사를 하며 엄한 교육을 받았다. 흔히 이재용 부회장이 세련된 영국 신사 스타일이라면 정 부회장은 잘 자란 양반집 장손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정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소탈하고 겸손하며 예절바른 태도를 지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 부회장은 흰머리도 염색하지 않아 나이에 비해 중후한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F세대 경영인답게 글로벌 리더로서 이미지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헤드셋을 낀 채 영어로 프리젠테이션하는 동영상은 유튜브에도 공개돼 현대차를 알리는 또 하나의 브랜드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한 대학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22년 전 네브래스카 풋볼팀의 쿼터백을 지낸 사람의 맏아들을 내년에 그 팀의 쿼터백에 임명하는 것이나, 2008년 올림픽 대표팀을 구성하면서 1976년 올림픽 대표선수들의 자녀 위주로 팀을 구성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워런 버핏도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빌 게이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한국의 재벌은 왕조처럼 운영된다”고 꼬집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글로벌 5위 자동차업체다. 정 부회장의 PI는 곧 현대차의 CI와 직결된다.

정 부회장이 글로벌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후계자로서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경영능력만으로 부족하다.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몫은 정 부회장이 쌓아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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