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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그룹은 ‘일등주의’를 표방한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건설과 중공업 계열사를 보면 삼성그룹의 일등주의가 무색해진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이재용체제가 사실상 가동되면서 숨가쁘게 사업구조를 재편해 왔다. 이 사업구조 개편에도 일등주의가 바닥에 깔려있다. 잘 할 수 있는 사업을 선택해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업구조 개편은 삼성그룹이 한화그룹에 방산과 화학 4개 계열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동안 삼성그룹에게 방산과 화학 계열사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시장의 의문은 삼성그룹의 건설과 중공업 계열사로 모인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답지 않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합병으로 활로를 찾으려 했지만 시장에서 거부당했다.
올해 삼성전자의 실적이 회복되고 이재용 부회장체제가 더욱 굳어지면서 이 부회장이 건설과 중공업 재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올해 삼성그룹 건설과 중공업 재편 나서나
삼성그룹은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제일모직 건설사업부에서 건설사업과 중공업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4개 계열사에서 모두 건설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삼성물산이 1위, 제일모직이 27위, 삼성엔지니어링이 28위, 삼성중공업이 32위에 올랐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여러 곳에 흩어진 건설사업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각 계열사의 규모가 만만치 않고 지배구조가 복잡해 건설부문 개편은 어려운 과제로 꼽혔다.
삼성물산이 2013년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전량 매수하면서 건설부문 개편이 가시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삼성물산은 이를 통해 삼성엔지니어링 2대주주로 떠올랐다.
지난해 삼성SDI와 옛 제일모직이 합병하면서 옛 제일모직이 보유하던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13.1%도 삼성물산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증권가와 삼성그룹 안팎에서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최대주주 지위에 오른 뒤 두 회사의 합병이 추진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부각됐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국내에서 독보적 규모의 건설사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지난해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추진했다.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할 경우 통합법인이 너무 비대해진다는 측면이 고려돼 방향을 틀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삼성그룹은 플랜트사업 정리에 먼저 착수했다. 두 회사를 합병해 해양플랜트 부분에서 시너지를 내려고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은 실패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은 언제든지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만큼 삼성중공업이나 삼성엔지지니어링이 독자적으로 삼성그룹의 일등주의에 맞는 실적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저가수주의 늪에 빠져있는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시장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풍력발전사업부 조직을 없애는 등 사업부 전반에서 몸집을 줄여가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지난해 조직개편으로 조직을 축소하고 올해 700명 가량 인원을 줄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핵심인력들이 투입돼 구조조정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사실상 그룹 수뇌부가 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합병 재추진을 위한 준비작업으로 해석한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이 합병한 뒤 장기적으로 통합 삼성중공업이 삼성물산에 합병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종적으로 삼성그룹의 건설부문을 한 곳으로 모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삼성물산은 상사와 건설부문을 분리해 제일모직과 합병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점쳐진다. 삼성그룹에서 단순히 사업 경쟁력 강화의 목적만을 두고 건설과 중공업부문의 재편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한 2대주주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상단에 위치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병할 경우 제일모직 최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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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 이재용, 특단의 대책 내놓을까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자 계열사의 사업을 챙기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또 최근 들어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도 직접 챙기고 있다. 이 부회장이 최근 중국 보아오포럼에 참석하는 자리에서 중국 시틱그룹과 만나 금융사업 확대방안을 논의한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상대적으로 건설과 중공업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의 직책을 맡는 이도 없다.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은 최근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베트남 항만공사장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나 4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베트남을 다녀왔고 삼성물산 현지직원들은 출국금지당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부터 9호선 공사 싱크홀 논란, 호남고속철 담합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삼성중공업도 잊을만하면 안전사고가 났다. 올해 2월 거제조선소 도크에서 협력업체 근로자가 추락사하는 사고가 터졌고 지난달 조선소 내에서 버스와 자전거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초 박대영 사장이 안전의 날 선포식을 열고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강조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맞는 경영이 이뤄지려면 건설·중공업 부분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경우 급격한 외형성장을 이루자 한때 오너 일가의 경영인이 몸을 담은 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의 사위이자 이서현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사장이 2012년 삼성엔지니어링에 배치됐다.
김 사장은 제일모직 부사장으로 있다가 사장으로 승진한 뒤 1년 만에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이동했다.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실적이 승승장구하면서 삼성그룹 내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오너 일가가 직접 경영에 참가하는 것은 30여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삼성엔지니어링 실적은 김 사장이 온 뒤로 내리막을 걸었다. 2013년 1조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내며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김재열 사장은 결국 3년 만에 제일기획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그룹이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이 오너 일가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꼈다고 보는 관측도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삼성그룹의 건설과 중공업 계열사의 사업구조 개편과 함께 이들 회사가 삼성 오너가의 3세 가운데 누구에게 승계될지도 주목하고 있다.
사업구조를 재편한 뒤 이재용 부회장이 건설·중공업부문을 끌어안을 수도 있고 레저와 리조트 부문을 맡은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와 함께 건설부문을 맡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그룹이 사업구조를 개편한 뒤 일부 건설과 중공업 부문을 방산과 화학 계열사처럼 정리할 수도 있다고 보는 관계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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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왼쪽)과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
◆ 건설 포기 못하면 중공업은?
삼성그룹에서 내부건설 물량을 감안하면 건설부문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삼성그룹 내부 공사물량만도 수조 원에 이른다.
삼성물산의 삼성그룹 내부 거래매출은 2013년 기준으로 3조2300억 원에 이른다. 삼성엔지니어링도 2조500억 원이나 된다.
삼성물산의 경우 수의계약 비중이 99.3%에 이르렀고 삼성엔지니어링은 100% 수의계약이었다. 삼성중공업도 매출은 470억 원 수준으로 작았지만 100% 수의계약했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이 건설부문에서 손을 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삼성물산(15조 원), 삼성엔지니어링(9조 원), 제일모직 건설부문(1조 원), 삼성중공업 E&I부문(4천억 원) 등 건설사업의 매출 규모만 25조 원에 이른다.
다만 중공업부문, 특히 조선업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삼성그룹은 철강업이나 기계공업, 해운업 등 조선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전후방산업들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업에서 크게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조선업황이 부진에 빠져 있고 삼성중공업이 부진한 실적을 이어갈 경우 삼성그룹이 과감히 ‘선택과 집중’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삼성그룹이 화학과 방산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한 것이 선례가 될 수 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체제에서 삼성그룹 역사상 최대의 계열사를 매각했다. 확실한 경쟁력을 갖춘 분야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대목이다. 삼성그룹이 중공업부문을 계속 안고 갈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재추진할 경우 경쟁력 강화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4월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한 뒤 화학 계열사를 11월에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