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본에 투자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걱정과 함께 국내 투자업계와 투자 관련 정부부처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왼쪽)과 김범석 쿠팡 대표이사.
금융투자(IB)업계 관계자는 26일 “국내 유망한 스타트업을 향한 해외 자본의 투자가 늘고 있다”며 “해외 투자자들과 국내 투자자들 사이의 투자 역량의 차이도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니콘이라 불리는 유망 스타트업들은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유니콘은 기업가치 1조 원을 넘어서는 비상장 기업을 일컫는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은 20일 3600억 원 규모의 해외 벤처캐피탈 자금을 공급받았다.
쿠팡은 11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운영하는 비전펀드로부터 2조2600억 원을 유치했다.
두 회사는 당분간 기업공개(IPO)를 하는 계획도 세우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이 단기간에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집착하기보다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해외 자본의 투자가 늘면서 스타트업 기업들은 기업공개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해외 사모펀드(PEF)나 국부펀드, 투자금융회사, 벤처캐피탈 등 자금 조달 창구가 다양해진 데다 기업공개에 따른 정보 유출, 각종 비용 증가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자들은 자금 공급 외에도 나름의 노하우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한 기업의 해외 진출이나 마케팅, 영업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해외 투자자들은 초기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얻고 스타트업은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기업가치를 키울 수 있어 서로 좋은 거래일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자본 유치로 국내 유망 스타트업 기업이 몸값을 높이면서 정작 국내 투자회사들이나 개인투자자들은 소외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들은 중개 수수료에 집중된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고 해외 금융투자회사 수준의 규모와 역량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으나 스타트업을 발굴해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는 것은 걸음마 수준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는 순자본비율(NCR)이 제한돼 있어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적다”며 “개선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안전성을 고려한 정부의 규제를 탓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순자본비율은 증권사의 재무 안정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대규모 투자를 하면 수치가 나빠질 수 있다.
일부 사모펀드는 운용자산 규모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스타트업 투자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스타트업보다는 대규모 인수합병(M&A) 거래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나마도 개인에게 유망 스타트업의 투자 기회는 더 적다. 애초에 정보도 부족할뿐더러 기업공개 규모도 줄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23일 2018년 기업공개 규모가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최근 5년 가운데 최저치다. 증시 여건이 악화하고 금리 인상과 무역분쟁 등 부정적 요인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개인들은 주로 코스닥이나 코스피에 상장된 주식을 사면서 투자에 나서기 때문에 유망 스타트업이 기업공개를 하지 않으면 투자 기회가 거의 제한된다.
정부가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하며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고 코스닥 활성화 펀드를 조성하는 등 4차산업혁명에 대응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할 정책적 의지를 보였다”며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혁신을 유도할 법안은 정치권의 다툼에 밀리거나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으로 미뤄지고 있다. 카풀 관련 법안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관련 정부부처도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시장이 침체하면서 4차산업혁명 등에 관한 투자심리도 한풀 꺾여 시기적으로 안 좋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9일 벤처캐피탈과 엔젤투자자, 증권사 관계자등을 모아 간담회를 열고“비상장 중소기업 투자는 리스크가 크고 투자금 회수 기간이 길다”며 “미국의 제도를 참조해 증권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