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취임 1년을 맞는다.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해 1년 동안 기업의 구조조정을 숨가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여전히 할 일이 많기만 하다. 현대상선의 경영 정상화를 이끌어야 하고 대우건설의 재매각과 KDB생명 등 자회사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 대우건설과 KDB생명 매각 등 과제는 계속
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앞으로 대우건설의 기업가치 올리기를 지원하며 재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올해 초 대우건설을 호반건설에 매각하려 했으나 모로코 등 해외사업장에서 3천억 원이 넘는 추가 부실이 드러나며 매각이 무산됐다.
이 회장은 대우건설 매각을 다시 추진해야 하지만 주가가 적정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매각 일정을 이른 시일안으로 바로 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우건설 주가는 5천 원대 초반을 머물고 있다. 호반건설이 인수하기로 한 가격(주당 7700원)에서 30% 넘게 하락했다.
다만 대우건설 해외사업장 점검에서 더 이상 부실이 나타나지 않고 안정화를 보이고 있는 점은 긍정적 신호다.
특히 베트남 신도시 개발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공사비 환급이 기대되는 등 실적 개선을 이끌 프로젝트들이 나타나고 있어 재매각을 위한 기반을 하나씩 다져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KDB생명 매각을 2020년까지 미루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
산업은행은 2010년 당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금호생명을 인수한 뒤 KDB생명으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그 뒤 2014년~2016년 3차례에 걸쳐 매각하려 했지만 가격 차이가 커 번번이 실패했다.
이 회장은 KDB생명에 3천억 원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면서 조급하게 매각에 나서는 것을 접고 차분히 실적 개선을 이끌어 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장은 현대상선의 경영 정상화라는 무거운 과제도 안고 있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이 들고 있던 국내 1위 해운사 타이틀을 넘겨받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 헤쳐나갈 경영환경도 녹록치 않다.
◆ 취임 1년 구조조정 성적표는 합격점 받아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해 금호타이어, 한국GM, STX조선해양 등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잡음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원칙론을 내세우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장은 언제나 원칙을 강조했다. 과거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 금산분리 원칙을 주장했고 그를 설득하려던 대기업의 회유나 거센 공세에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그의 '원칙주의'가 제대로 드러났다.
이 회장이 STX조선해양과 금호타이어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여준 원칙은 앞으로 있을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모범답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좌고우면'할 수밖에 없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심을 잘 잡았다는 것이다.
STX조선해양은 2013년부터 채권단의 관리를 받았다. 8조 원의 혈세가 STX조선해양에 투입됐지만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며 자금 지원으로 연명해 왔다.
이 회장은 STX조선해양에 더 이상의 자금을 투입할 수 없다고 결정하고 기업 스스로 고정비를 감축해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노사는 진통 끝에 스스로 고정비 감축안을 내놨다.
이 회장은 바로 이어진 금호타이어 구조조정에서도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 원칙을 고수했다. 금호타이어 노사가 해외 매각 찬성, 고정비 감축 등의 자구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해외 매각을 철회하고 법정관리에 보낼 것이라 강하게 경고했다.
결국 금호타이어 노사도 흔들리지 않는 이 회장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협상 마감시한 몇 시간 전에 자구안에 합의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포기’하는 과정에서도 이 회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에 애착을 보였으나 이 회장과 단 둘이 만난 뒤 생각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박 회장에게 매우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금호타이어를 회생시키기 위한)그림 안에 박 회장은 없다”고 못박기도 했다.
한국GM 구조조정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이 회장은 한국GM 구조조정에서 '가성비론'을 꺼내들었다. 수천억 원을 투입해 15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4인가구로 치면 수십만 명의 생계가 달렸다”며 “(협상 내내) 피가 말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GM이 정부 지원금만 받아먹고 결국은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란 우려는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상태다. 이를 감시하기 위한 산업은행의 견제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아무리 원칙주의자라고 해도 구조조정 최대의 난제인 일자리 문제에서는 완전히 자유롭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산적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계속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