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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주 NXC 대표(왼쪽)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
함께 꿈을 꾸던 동지인데도 꿈이 깨지면 적으로 바뀌는 것이 세상사일까.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대표가 평소 ‘존경하는 선배’라고 불렀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엔씨소프트의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단순히 20년 지기 대학 선후배 사이가 전부는 아니다.
이들은 함께 세계 최대 게임업체를 만들려고 의기투합한 동지였다. 두 사람은 국내 게임산업이 위기에 빠졌다는 데 공감하고 협력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목표로 했던 대형 게임업체 인수가 실패로 돌아가고 두 회사가 시너지를 내는 데 한계를 보이자 이들이 함께 꾸던 꿈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택진 대표는 예전으로 돌아가 각자의 회사에 집중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김정주 대표는 엔씨소프트에 투자한 8천억여 원을 보상받으려 했다.
김정주 대표가 엔씨소프트 경영참여를 결정하자 이제는 엔씨소프트를 인수해 넥슨을 세계 최대 게임업체의 반열에 올리는 꿈을 혼자서라도 실현하려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 넥슨, 엔씨 지분 몰래 인수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의 갈등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예견됐다.
당시 넥슨은 엔씨소프트의 지분 14.7%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0.4%를 추가로 매입했다. 이에 따라 넥슨이 보유한 엔씨소프트의 지분은 15%를 넘어섰다. 지분율 15%는 기업결합을 위한 최소요건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주 대표는 김택진 대표 몰래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씨소프트는 당시 넥슨의 지분매입 소식에 “김택진 대표조차 사전에 알지 못했다”며 “두 회사의 신뢰에 큰 균열이 발생했다”고 반발했다.
김정주 대표는 추가 지분인수를 계기로 엔씨소프트에 이사를 파견하는 등의 방안을 요청했다고 한다.
넥슨은 거액의 돈을 엔씨소프트에 투자했지만 두 회사의 시너지를 내 수익을 올리지도 못하고 인수 당시보다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보고 있었다.
김정주 대표가 25만 원에 인수한 엔씨소프트의 주식은 지난 27일 종가를 기준으로 18만9천 원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김정주 대표는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택진 대표는 넥슨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일각에서 김택진 대표가 지난 23일 정기인사 과정에서 부인인 윤송이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부부경영을 강화한 데 대해 김정주 대표가 매우 불쾌해 했다는 말도 나온다.
윤 사장 사건이 이번 경영참여를 결심하는 데 한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넥슨 측은 "윤 사장 승진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며 "엔씨소프트 측에 계속 대화를 요청했는데 응답이 없어 경영참여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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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
◆ 무위로 끝난 일렉트로닉아츠(EA) 인수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그동안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이들은 미국의 일렉트로닉아츠(EA) 인수 추진을 계기로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했다. EA는 축구게임 피파 시리즈로 유명한 세계적 게임사다.
애초에 김택진 대표가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김정주 대표에게 매각한 것도 이 회사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김택진 대표는 2012년 11월 “해외 게임업체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넥슨에 지분을 팔았다”며 “오랫동안 같이 고민했고 김정주 대표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라 두 회사가 충분히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주 대표가 김택진 대표에게 먼저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택진 대표도 해외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리그오브레전드’가 국내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외국게임이 국내시장에서 흥행을 거듭하자 국내 게임업계에 위기가 왔다는 데 공감했다.
김택진 대표는 2012년 보유한 엔씨소프트 지분 14.7%를 넥슨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8045억 원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정주 대표의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최대주주로 올라서고 김택진 대표는 2대주주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김정주 대표는 김택진 대표에 대해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머리가 좋다”며 극찬했다. 김택진 대표도 “김정주 대표는 새로운 문화트렌드를 얘기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업계에서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가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바탕으로 EA를 공동으로 인수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택진 대표가 지분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과 넥슨이 2012년 7월 서울 강남사옥을 매각하며 받은 1300억 원을 합치면 약 1조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수는 실패로 끝났다. EA 이사회가 회사매각 안건을 부결시킨 것이다. EA는 지분을 일부 매각할 생각은 있었지만 경영권까지 넘기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밸브’의 인수에도 관심을 기울였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 밸브는 1인칭슈팅(FPS)게임 ‘카운터스트라이크’, ‘하프라이프’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 게임 개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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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주 NXC 대표 |
◆ 마비노기2 프로젝트 중단
두 사람은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시너지를 내려했지만 실패했다.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2012년 온라인 역할수행게임(RPG)인 ‘마비노기2’를 지분 인수 뒤 첫 협업 프로젝트로 추진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진척에 난항을 겪었다. 같은해 가을로 예정된 전시회 출품과 시범테스트가 모두 무산되기도 했다.
김택진 대표는 사실상 마비노기2의 총괄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는데 출품을 위해서 더욱 많은 교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13년 1월 이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협업개발본부 ‘N스퀘어’에 속해있던 마비노기2 개발팀은 넥슨의 신생 개발조직인 ‘게임기술연구소’로 이동했다.
넥슨은 “국내 게임업계에서 모바일게임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온라인 PC게임의 수익성 악화됐다”며 “온라인 PC게임 신작의 흥행성이 불투명한 것이 중단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소년층이 많이 이용하는 가벼운 게임을 주로 개발해 온 넥슨과 중장년층까지 이용하는 고사양 게임을 개발해온 엔씨소프트가 소통에 문제를 보였다는 것이다.
◆ 서울대, 창업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인연
김정주 대표와 김택진 대표는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김택진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85번이고 김정주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이다.
김정주 대표는 후배지만 게임업계에 먼저 뛰어들었다.
김정주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사업에 뜻을 품고 1994년 넥슨을 설립했다.
당시 김정주 대표는 선배인 김택진 대표와를 찾아가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김택진 대표가 그래픽 분야에서 독보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택진 대표는 거절했다. 그뒤 김정주 대표는 1994년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와 함께 넥슨을 설립했다.
김택진 대표는 1년 뒤인 1997년 현대전자에서 나와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오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