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이 중국에너지기업 어음 채무 불이행을 두고 책임 다툼을 벌여 갈등이 커지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회사 CERCG캐피탈의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이 부도 위기에 놓인 뒤 국내 증권사들은 중국에서 자구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자구안이 늦어지면서 책임 공방이 시작됐다.
11일 유안타증권이 150억 원, 23일 신영증권이 100억 원 어음채권 매수청구 소송을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제기했다.
유안타증권은 “현대차증권 채권담당자가 유안타증권 채권담당자에게 어음채권 150억 원을 사기로 약속했다”며 “그같은 약속이 없었다면 애초에 문제가 된 어음을 매입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차증권은 “채권 담당자들 사이에서 그런 얘기가 오간 것은 맞지만 법적 효력이 발생할 정도의 단계가 아니었다”며 “메신저로 나눈 대화에 불과하고 정식 계약이 아닌 협상단계였다”고 대응하고 있다.
신영증권도 현대차증권이 메신저로 100억 원 어음채권을 매수하겠다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소송을 냈다.
증권사 사이 채권거래는 K본드(K-Bond)라는 채널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은 현대차증권 사이에 일반 메신저 등을 통해 연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증권도 단순 중개자로서 채권을 다른 회사에 팔기 위한 목적에 일시적으로 사려던 것인데 채무불이행 위험으로 다시 팔릴 가능성이 희박한 채권을 모두 떠안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어 난처하게 됐다.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이 자구안을 6월 말까지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7월 말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자 채권을 매입한 국내 증권사들은 더 초조해졌다.
현대차증권이 500억 원, BNK투자증권은 200억 원, KB증권은 200억 원, 유안타증권은 150억 원, 신영증권은 100억 원 규모로 이 채권을 들고 있다.
채권 주관사였던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관계자들과 국내 채권단이 함께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 본사를 찾아가 상황을 해결해보려 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은 외국계 컨설팅회사와 함께 자구안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관련 자회사의 재무재표도 완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업계에서는 업계 관행인 예약매매가 분쟁을 더 키우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증권사 사이 신뢰를 바탕으로 전화나 메신저로 거래를 미리 예약해두는 때가 많은데 분명치 못한 거래 관행으로 계약 이행책임이 불명확해졌다는 것이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증권사 사이 신뢰를 바탕으로 메신저, 유선전화, 휴대폰 등으로 장외거래를 많이 하고 있다”며 “예약매매 등이 이미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현대차증권도 계약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의 책임론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부실한 채권을 유통했다는 것이다.
두 주관사는 5월 채무불이행이 처음 불거졌을 때에는 만기가 11월이니 우려가 지나치다며 논란을 진정시켰으나 중국의 자구안이 계속 늦어지자 지금에 와서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만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기관투자자인 채권자들의 요청으로 어음을 발행했다”며 “한화투자증권이 나서서 부실채권을 판매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나이스신용평가사와 서울신용평가사가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의 신용평가를 허술하게 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두 신용평가사는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을 베이징시 소유 지방공기기업으로 보고 신용등급 A2를 부여했지만 자회사에서 어음 채무불이행이 발생하자 20일 뒤 C등급으로 내렸다.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에 등록이 안 돼 있어 실질적으로 공기업이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증권사 관계자는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이 공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채권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8월 나이스신용평가사와 서울신용평가사를 대상으로 기업 등급평가를 합당하게 하는지 신용평가방법 테마검사의 계획을 세워둬 이번 채권 사태와 관련한 검토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