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한수원을 종합 에너지회사로 탈바꿈하기 위해 회사이름에서 ‘원자력(Nuclear)’을 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 사장이 여러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알린 만큼 한수원의 변화와 관련한 부정적 인식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12일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현재 외부 용역 컨설팅을 통해 회사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는 것을 포함해 사명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수원이 종합 에너지회사로 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 계획을 놓고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 안에 회사이름 변경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9월로 예정된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 직원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거쳐 회사이름 변경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사명에서 원자력을 빼는 것은 물론 회사이름 변경 여부와 관련해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한수원이 회사이름 변경을 포함한 외부 컨설팅을 진행하는 데는 정 사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취임할 때부터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 한수원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한수원을 원전 중심 회사에서 종합 에너지회사로 변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이란 회사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계획대로라면 국내 원전은 점진적으로 줄어 2070년까지 운영된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2070년까지 원전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 또한 한수원의 신사업으로 떠오르는 원전 해체사업, 주력사업으로 추진하는 원전 수출 등도 대부분 원전 관련 사업이다.
한수원은 민간기업이 아닌 공기업이다. 한수원과 원전을 떼어 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공기업 가운데 한수원만 이름을 바꾸게 되면 다른 공기업들도 회사이름 변경을 추진할 수 있다.
더구나 한수원이 탈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이름에서 원자력을 떼어내는 일은 사회적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수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등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계속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 사장 역시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자마자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발표하면서 탈원전을 반대하는 측으로부터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 사장이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회사이름 변경을 놓고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회사이름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화한 것은 한수원의 변화와 관련한 부정적 인식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 사장은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직원들의 동의를 전제로 회사이름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며 “사실 사석에서 수많은 원자력학계와 산업계 인사들이 회사이름은 꼭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한다고 강변하셨는데 다들 어디에 숨으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사장이 한수원의 강도 높은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회사이름이 바뀔지는 불투명하다.
한수원이 회사이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수원은 2001년 한국전력공사에서 분리돼 출범한 뒤 2006년과 2011년, 2014년 등에도 회사이름 변경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한수원은 11일 회사이름 변경과 관련한 해명자료에서 “참고로 세계 유수의 원자력회사를 보면 브랜드 강화 등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회사명을 사용하고 있다”며 미국의 엑셀론(Exelon), 독일의 이온(e-on), 프랑스의 아레바(Areva) 등을 예로 들었다.
한수원은 현재 KHNP(Korea Hydro & Nuclear Power)라는 영문 회사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