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4배 인상을 요구받은 임차인이 임대인을 망치로 폭행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 서촌 궁중족발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얼마나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줬다.
지방선거 이후 국회가 비슷한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 시선이 몰린다.
13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처리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서민 생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제동이 걸려 있다.
지방선거는 밑바닥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민심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자유한국당의 태도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자유한국당은 임차인의 계약갱신권 행사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쪽에 서 있다.
지난해 11월21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 법이 기본규정이 생길 때도 소유권 침해라는 논란이 많았는데 이걸 이렇게 대폭 제한을 없앤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도 “재산권의 침해도 있지만 임차인 보호가 오히려 안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경제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부정적 의견을 냈다.
그러자 우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2월21일 “상가 세입자들의 눈물, 손가락이 잘린 궁중족발 사장의 아픔이 자유한국당에 들리지 않느냐”며 법안 통과에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상가임차 상인들의 모임인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은 1월22일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은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반대를 멈추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5월 임시국회에서 핵심법안 처리를 위해 원내 4개 교섭단체가 구성한 민생입법협의체에서 중점 법안 13개 가운데 하나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시하며 입법을 시도했으나 5월 국회에서도 개정안 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안은 여전히 소관 상임위원회 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현행법의 한계를 드러내는 궁중족발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확산됐다.
서촌 궁중족발은 2009년부터 영업을 해 왔는데 2016년 1월 건물주가 바뀌면서 기존 300만 원 수준의 임대료를 1200만 원으로 올렸다. 임차인은 이에 반발했으나 계약 이후 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명도소송에서 패소했다.
건물주는 소송 결과에 따라 강제집행을 진행했고 이에 저항하던 임차인의 손가락이 잘리기도 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은 결국 9일 임차인의 망치 폭행으로 이어졌다. 임차인인 김우식 궁중족발 사장은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이런 사태에 정치권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많다. 상가임대차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소상공인연합회는 12일 “제2의 궁중족발 사태를 막기 위해 국회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상황이 어떠하든 폭력 자체는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이 사건의 이면에 급작스런 임대료 폭등으로 한 가족을 절망에 빠트리는 폭압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역시 “궁중족발 사건은 세입자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며 “국회가 직무태만을 각성하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이전부터 궁중족발 사태를 주시해 왔다. 우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 강제집행에 저항하다가 손가락을 잘린 김우식 사장을 병문안하기도 하고 제윤경·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사장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계약 갱신권 기간 확대는 19대 대통령선거 때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또 바른미래당, 정의당 등 야당도 계약 갱신권 확대안을 발의한 만큼 서촌 궁중족발 사건을 계기로 국회 논의가 본격화되면 통과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