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이 순환출자고리를 통해 그룹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놓고 여러 시나리오가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 계열사를 각각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회사끼리 합병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우세하다.
지배구조 개편작업은 경영권 승계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어떤 방식으로 그룹의 지배구조를 짜느냐에 따라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3분기 말 기준으로 현대차 지분 2.28%와 기아차 지분 1.74%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모비스 지분은 하나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꼽히는 ‘인적분할 후 투자회사끼리 합병안’이 실행될 경우 정 부회장이 확보하게 되는 지주회사 지분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정 부회장은 지배력 확대를 위해 지주회사 지분 매입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해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예전부터 꾸준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 부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할 현대차그룹의 비상장계열사로 주목받았다.
정 부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11.72% 보유하고 있는데 27일 장외주식시장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지분가치는 5700억 원이 넘는다.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세워질 지주회사 지분을 매입하기 위해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를 추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재계는 바라본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기업공개를 추진할 경우 정 부회장은 현재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액보다 더욱 많은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1~3분기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4조6285억 원, 영업이익 4062억 원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5.5%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9.2% 늘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모회사인 현대건설이 1~3분기에 별도기준으로 영업이익 3350억 원을 낸 점을 고려하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미 현대건설의 영업이익을 큰 폭으로 추월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의 힘을 빌려 주택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9월에 서울시 송파구 잠원동에 위치한 신반포22차 재건축사업을 수주해 강남에 처음으로 진출한 데 이어 최근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136번지 일대의 재건축사업을 담당할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건설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을 그동안 꾸준히 키워온 것은 정 부회장의 보유지분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읽혀왔다”며 “지배구조 개편 요구를 거세게 받고 있는 만큼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