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에서 황각규 사장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2인자로서 황 사장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새로운 롯데그룹을 만들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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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각규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사장)이 4월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롯데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새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뉴시스> |
25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에 직접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27일과 28일 모두 재판에 참석해야 해 참석이 불투명하다.
신 회장은 재판부에 불출석사유서를 내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만남이 오후 늦게 이뤄질 경우 재판이 끝난 뒤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신동빈 회장 대신 황각규 사장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황 사장은 올해 초 롯데그룹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경영혁신실장에 오른 뒤 재판으로 바쁜 신 회장을 대신해 여러차례 공식석상에 얼굴을 비추며 ‘뉴 롯데’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특히 롯데그룹의 새로운 비전을 직접 발표하고 신동빈 회장과 함께 참가한 행사에서도 신 회장에 이어 주요발언을 하는 등 롯데그룹에서 확실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앞으로 황 사장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8월 둘째주부터 일주일에 4차례씩 법원에 나가 재판을 받아야 한다. 피고인인 신 회장이 재판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데다 재판이 대부분 오후 늦게 끝나는 만큼 한동안은 재판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황 사장의 존재감이 지나치게 커지고 2인자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신동빈 회장의 경영쇄신안이 무색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롯데그룹은 과거 신격호 명예회장 시절부터 참모형 부회장이 총수를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보좌해 전근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신 회장은 이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해 초 임원인사에서 수십년 동안 각 계열사에서 실무를 봤던 전문가 3명을 한꺼번에 부회장으로 올리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그룹에서 이들의 존재는 아직 부각되지 않고 있다.
황 사장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황 사장이 이끌고 있는 경영혁신실도 과거 정책본부처럼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그룹은 최근 몇년 동안 경영비리 관련 검찰수사와 형제 간 경영권 분쟁 등을 겪은 뒤 정책본부를 경영혁신실로 바꾸고 조직규모도 대폭 축소했다.
정책본부는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로 불필요한 중복투자를 방지하는 등 효율성과 계열사 간 시너지를 위해 조직됐지만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권력이 집중되고 각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각 계열사가 정책본부에 보고를 하기 위한 경영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름은 바뀌었어도 경영혁신실은 여전히 투자와 고용, 지배구조개편, 대외이미지 개선 등 그룹 차원의 핵심업무를 지휘하고 있다.
황 사장과 경영혁신실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BU(Business Unit)체제가 출범할 때 나왔던 ‘옥상옥’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
BU체제가 출범할 당시 기존 신동빈 회장-정책본부-각 계열사로 이어졌던 구조에서 BU장이 중간에 추가되고 경영혁신실의 권한 역시 그대로 유지되면서 의사결정구조가 더욱 복잡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BU체제가 도입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아직 과도기인 상황에서 황 사장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BU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각 BU장들은 부회장이고 황각규 사장은 사장인데 그룹 내에서 BU장들의 존재감은 미미한 반면 황 사장은 2인자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며 “가뜩이나 BU체제가 안착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 위계질서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