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오너의 독단적 의사결정과 사외이사의 견제기능 상실은 전형적 한국 재벌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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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감시역할이 부족했으며 이는 전형적인 한국 재벌기업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전부지 인수 관련 이사회에 참석한 한 이사는 “한전부지가 현대차그룹에 정말로 필요한지, 비싼 가격에 한전부지를 사들이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를 이사회에서 질문했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집행부는 한전부지에 통합사옥을 짓고 자동차 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인수가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고 이 이사는 밝혔다.
이 이사는 “집행부가 사외이사를 설득하는 데 절박함이 배여 있었다”며 “한전부지 인수는 단순 투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가격이 문제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저널은 현대차그룹의 다른 이사들의 말을 인용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수년 전부터 통합사옥 부지 인수를 구상했지만 이 현안을 이사회에서 논의한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으며 정 회장이 이사회에 불참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경제개혁연대가 의사록을 열람한 결과 정 회장은 한전부지 인수와 관련해 개최된 두 번의 이사회 모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 회장은 한전부지 입찰에 참여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3곳 중 2개 회사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인수는 한국의 재벌 오너들이 어떻게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복잡한 지배구조를 통해서 그룹 전체에 지배력을 지닌 재벌 오너들은 이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불만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국의 연약한 지배구조와 외부감시 체계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라며 “현대차그룹이 땅을 원하니까 사외이사진들은 잘 살펴보지도 않고 승인해준 셈”이라고 밝혔다.
사외이사들은 오너들의 영향권 아래 있어 오너의 뜻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박근혜 정부가 대기업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 위해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기존 순환출자고리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채이배 회계사는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 경제민주화라는 명목으로 재벌기업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재벌기업의 지배구조가 변화한 뚜렷한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