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해양플랜트의 납기일정을 맞추는데 집중한 탓에 안전관리에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 납기일정 촉박해 사고 발생했나
2일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사상자 31명이 발생한 사고현장에서 건조되고 있던 설비는 삼성중공업이 2012년에 프랑스 정유기업인 토탈의 자회사 토탈E&P로부터 5억 달러에 수주한 해양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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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삼성중공업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설비의 공사를 86%가량 진행했다.
삼성중공업이 노동절인 1일에도 작업을 실시한 것은 납기일정을 준수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랫폼을 6월까지 발주처에 넘겨주기 위해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등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납기일정이 2달여 남은 점을 감안해 노동절에도 직영과 하청기업 인력 일부를 동원해 건조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직을 기준으로 한 삼성중공업 인력은 직영이 약 5천여 명, 사내협력기업은 약 2만5천여 명 규모다. 이 가운데 1일 출근한 직원은 직영 1천여 명, 하청기업 1만2천여 명이다.
노동절은 법정근로일이 아니기 때문에 삼성중공업 노동자들이 1일에 근무한 것을 크게 문제삼기는 힘들다. 문제는 해양플랜트를 제때 인도하는 데만 관심을 쏟은 탓에 안전관리를 소홀히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는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타워크레인의 행동반경이 겹친다. 두 설비는 선박블럭 등을 들어 옮기는 작업 등에 사용되는 대형장비로 행동반경이 겹치지 않는 곳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성중공업이 두 장비를 동시에 가동하고 있던 탓에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효섬 삼성중공업 조선소장은 2일 오전에 사고현장을 공개하기에 앞서 기자들로부터 질의를 받는 자리에서 “골리앗크레인의 주행범위 내에 타워크레인이 있었던 것은 맞다”며 “크레인 운전수와 신호수 간의 소통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이 구성한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수사본부는 현재 골리앗크레인에 타고 있던 신호수 6명과 타워크레인 신호수 3명 등이 안전규칙 등을 어겼는지 조사하고 있다.
◆ 조선사, 해양플랜트 적기인도에 왜 사활 거나
삼성중공업이 그동안 해양플랜트의 적기인도 실패로 수천억 원의 적자를 냈던 경험이 있어 노동절에도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2012년에 일본계 호주자원개발기업인 인펙스로부터 27억 달러 규모의 익시스 해양가스생산설비(CPF)를 수주했는데 2015년 말 한 차례 인도를 연기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두 차례나 인도일정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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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크레인 충돌사고가 발생한 현장. |
삼성중공업이 처음 건조해보는 설비였던 탓에 초기 설계절차부터 사업이 지연됐고 후속공정을 진행하면서 사양이 변경돼 작업물량과 비용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이 발주처에 먼저 익시스 프로젝트의 인도일정을 늦추자고 요구한 탓에 삼성중공업은 수차례 사업지연에 따른 충당금을 반영하기도 했다.
해양플랜트를 제때 인도하지 못할 경우 매달 설비를 유지하는데만 100억 원 이상 들어가고 발주처는 설비를 제때 받지 못했다며 보상금 등을 요구한다. 자칫하면 수천억 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건조일정을 무리하게 맞추는 데 신경을 쏟았을 수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관계자는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휴일마저 반납하고 일해야 하는 잘못된 하청구조 탓에 협력기업 직원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납기일정을 준수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관리도 제대로 안된 것을 주요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현재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거제경찰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이 사고현장을 검증하고 있는 만큼 정확한 원인을 규명한 뒤 사고를 수습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