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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현대차그룹이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부지를 인수하는 데 10조550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쓴 데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혹평을 쏟아내고 있다.
10조5500억 원은 한전부지 감정가의 3배, 공시지가의 7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또 지난해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비의 5.7배에 이른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본업의 역량강화보다 이와 무관한 통합사옥 부지 마련에 돈을 펑펑 썼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국내 증권사들은 19일 한전부지 입찰에 참여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3사의 목표주가를 내렸다. 특히 하이투자증권은 3사의 목표주가를 각각 20%씩 하향조정했다.
일본계 노무라증권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목표주가를 각각 21.4%, 22.2%씩 내렸다. 기아차 목표주가는 1.6% 내렸다.
노무라증권은 “한전부지 인수대금으로 배당, 기술개발, 시설확장에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결정은 자본의 비효율적 사용”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3사가 한전부지를 낙찰받은 뒤 쏟아진 관련 증권사들 보고서에 현대차그룹을 향한 비판이 가득했다. 삼성증권은 “완성차의 성장이 당분간 그룹의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 인수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 본업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현대기아차가 10조 원을 인수합병에 사용했다면 글로벌 1위에 오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글로벌 5위다.
최 연구원은 “올해 1월 피아트가 인수를 마무리 한 크라이슬러의 매각금액이 약 97억 달러”라며 “현대차 그룹이 크라이슬러를 인수했다면 판매대수 기준으로 완성차 중 글로벌 1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뿐 아니라 현대모비스도 본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자동차업계에서 신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부품사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글로벌 부품사간 연구개발(R&D)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며 “한전부지 개발로 그룹 차원의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지만 이는 연구개발 및 인수합병 재원의 감소라는 기회비용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의 의사결정 과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몽구 회장은 “다른 경쟁사를 의식하지 말고 반드시 한전 부지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면밀한 검토를 진행하지 않은 채 감정가의 3배에 이르는 입찰가를 써낸 것으로 보인다.
류현화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의 입찰금액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정보력이 부족했고 결정 이후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것이라는 면밀한 검토가 미흡했다”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목적을 위해서 수조 원을 낭비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번 투자결정은 대다수 주주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배제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며 “그 규모가 경영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천문학적이고 수익창출의 목적으로 해석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긍정적 해석은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의 우려는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주가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낙찰받은 18일 3사의 주가는 각각 9.2%, 7.8%, 7.9%씩 떨어졌다. 하루 만에 증발한 시가총액이 모두 8조5천억 원에 이른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주가는 이틀째 하락했다. 두 회사의 주가는 19일 각각 1.52%, 1.56%씩 떨어졌다. 기아차 주가만 유일하게 0.92% 오르며 반등에 성공했다.
현대차 노조도 입찰과정에서 드러난 그룹 의사결정의 문제점과 연구개발 등의 기회비용을 지적하며 한전부지 매입철회를 주장했다.
노조는 19일 성명서를 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한전부지 매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이는 비상식적 재벌경영, 황제경영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또 “회사가 이 천문학적 비용을 연구개발에 투자를 했더라면 노조와 국민은 현대차의 발전전략에 대해 여론과 힘을 모아주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