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을 놓고 대우조선해양과 KDB산업은행에 추가 자료를 요청한다.
추가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과 관련한 공을 다시 산업은행 쪽으로 넘길 가능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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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면욱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
국민연금공단은 29일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기에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투자기업인 대우조선해양과 대주주인 산업은행 측에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이를 확인한 뒤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 발표 이후 해명자료를 제외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8일 실무진을 모아 정부의 지원방안을 검토하는 첫 회의를 열었으나 관련 자료부족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에 공식적으로 추가 자료를 요청한 것을 놓고 볼 때 금융당국이 대우조선해양의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과 사전교감이 부족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자율적인 채무조정에 실패할 경우 사실상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압박만 할뿐 사채권자집회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에 충분한 자료조차 제공하지 않은 셈이다.
금융당국이 지원방안을 발표하기 전 시중은행들을 모아 놓고 출자전환 등에서 사전동의를 구한 것과 사뭇 다르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정부의 압력으로 찬성표를 던져 논란이 빚어진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우조선해양이 주체가 돼 국민연금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금융당국이 국민연금을 직접 만나 정부안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박근혜 게이트로 구속돼 이사장이 공석인 만큼 금융당국이 국민연금을 직접 접촉하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금융당국의 입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만큼 투자기관 본연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국민연금 가입자를 위한 기금이익을 높이는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기금이익’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과 관련한 공을 산업은행 쪽으로 넘길 가능성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정부의 지원방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힘과 명분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연금은 2019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1조3500억 원 가운데 3900억 원가량을 보유해 가장 많은 부담을 안고 있다.
2015년 10월 서별관회의를 통한 불투명한 지원과정,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도덕적해이 등이 현재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많은 만큼 정부의 지원방안을 조건부로 받아들일 명분도 충분해 보인다.
시중은행들은 28일 사채권자들의 자율적인 채무조정을 전제로 정부의 지원방안을 따르기로 합의하면서 사채권자집회의 열쇠는 사실상 국민연금이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구석에 몰린 상황에서 추가감자 등 새로운 지원조건을 내걸어 산업은행에 공을 넘긴다면 대우조선해양 지원과 관련한 선택의 부담을 전가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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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이 사전회생계획제도에 들어가도 피해규모에 크게 차이가 없어 시중은행과 달리 금융당국과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중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이 사전회생계획제도에 들어갈 경우 대규모의 선수금환급이 일어날 위험이 있지만 국민연금은 보유한 채권의 출자전환비율이 높아지는 데 그친다.
출자전환비율이 높아질 경우 단기적으로 피해규모는 커지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만기유예 채권의 상환여부가 불투명한 만큼 정부의 지원방안과 사전회생계획제도의 피해규모 차이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의 가치보전방안, 법률적위험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4월17일과 18일 예정된 사채권자집회일까지 최종입장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4월 중순 열릴 사채권자집회 전까지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겠다고 밝힌 만큼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과 보이지 않는 힘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산업은행 실무진과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은 30일 전주 국민연금공단을 방문해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들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