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7-20 17: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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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정부가 외환정책의 방향을 '환율 안정'에서 '원화 국제화'로 전환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외국인의 원화 거래를 제약해온 규제를 단계적으로 풀고 해외에서도 원화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자본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란 정부의 기대가 현실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정부가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하며 외환정책을 '환율 안정'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나섰다. 사진은 재정경제부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북문 현관. <연합뉴스>
외환위기 이후 유지해 온 외환정책의 큰 틀을 바꾸는 만큼 성장 효과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갈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 시선이 나온다.
20일 정부 움직임을 종합하면 정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30년 가까이 유지해 온 외환정책의 근간을 달러화 수급 안정에서 원화 국제화로 바꾸는 채비에 나섰다.
앞서 정부 관계부처는 19일 합동으로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번 로드맵은 해외에서 원화를 자유롭게 보유·결제·거래할 수 있도록 원화를 '규제통화'에서 '자유교환통화' 수준으로 전환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이를 위해 역외 원화거래 인프라 구축, 원화거래 수요 확대, 원화 유동성 공급 확대, 리스크 관리체계 구축 등 4대 전략을 제시했다.
이번 로드맵이 주목받는 이유는 개별 제도보다 정책의 기반이 되는 '철학'의 변화에 있다. 한국의 외환정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 안정과 자본 유출입 관리를 정책의 핵심적 목표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 투자는 대부분 자유화됐지만 원화를 해외에서 보유하거나 결제하는 데는 상당한 규제가 뒤따랐다.
정부도 외국인이 역외에서 원화를 자유롭게 조달·결제할 인프라가 부족하고 자본거래 사전신고 등 제도적 제약이 존재해 원화의 국제적 활용도가 제한돼 왔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 주식시장이 세계 6~7위 규모로 성장하고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는 등 자본시장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고 바라봤다. 과거에는 외환위기 재발 방지를 위해 원화 활용을 제한하는 데 정책의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원화 국제화를 통해 해외 자금을 유치하고 자본시장 경쟁력을 높일 여건이 마련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로드맵 발표를 통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고도화 및 자본시장 선진화를 감안하면 원화 국제화 추진은 필수적"이라며, 원화 국제화가 자본시장 발전과 기업의 거래비용 절감, 환율 변동의 실물경제 영향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WGBI 편입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추진 등 외환·자본시장 선진화도 원화 국제화의 여건을 성숙시켰다고 평가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더 커져야 하고 이를 위해 24시간 시장 개방이나 역외시장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한 절차"라며 "외환위기 경험이 있고 수출입 비중이 커 환율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그동안은 위험을 우려해 외환시장 발전을 제한해 왔지만 시장을 키우려면 어느 정도 추가적인 위험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로드맵을 통해 가장 먼저 손대는 부분은 외국인의 원화 접근성이다. 정부는 해외 금융기관을 '역외원화결제기관'으로 지정하고 이를 이용하는 외국인 사이 원화거래를 제한 없이 허용하기로 했다. 외국인은 역외원화결제기관에 개설한 원화 계좌를 통해 국내 계좌 없이도 외국인 간 원화 송금과 결제를 할 수 있게 되고 원화 자본거래에 대한 사전신고 의무와 은행의 확인 절차도 대폭 완화된다. 한국은행에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27년부터 24시간 운영되는 역외원화결제망도 구축한다.
이번 로드맵은 원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MSCI가 한국 시장에 대해 지적해온 핵심 사안을 해소하려는 성격도 담고 있다. MSCI는 올해 한국 증시를 관찰대상국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원화의 역외 실물 결제가 불가능하고 야간 외환시장 유동성이 부족해 해외 투자자가 국내 자산에 투자하기 위한 원화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을 주요 한계로 지적했다.
정부는 역외원화결제기관과 24시간 역외원화결제망 구축으로 이러한 제약을 줄이는 한편 거래·결제 자동화, 투자자 등록 개선, 영문공시 확대 등 남은 MSCI 시장 접근성 개선 과제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원화 국제화는 외국인 투자 편의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원화 활용 범위를 투자와 무역, 디지털 금융으로 넓히겠다는 구상도 함께 담았다.
정부는 외국인 사이 국채·통안채 대차거래를 허용하고 비거주자의 단기 원화 운용을 확대하는 등 원화 자산의 활용도를 높이기로 했다.
▲ 정부는 원화 국제화 로드맵에 원화 활용 범위를 투자와 무역, 디지털 금융으로 넓히겠다는 구상도 함께 담았다. 사진은 5만 원권 원화 지폐. <연합뉴스>
기업들이 무역대금을 원화로 결제하면 정책금융 금리 우대와 무역보험 한도 확대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원화 표시 거래가 늘어나면 기업의 환전 비용과 환헤지 비용을 줄이고 달러 의존도도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는 디지털 금융 환경 변화에도 대응한다. 국제결제 프로젝트 '아고라' 참여를 통해 블록체인 기반 국제결제 체계에서 원화 활용 기반을 마련하고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 제도 정비와 국채 토큰화 실증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원화 국제화는 성장 기회와 함께 새로운 위험도 수반한다. 정부도 원화 국제화에 따라 외환시장 규모가 커지고 자본 유출입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으며 글로벌 금융시장과의 연계가 확대되면서 외부 충격이 국내로 빠르게 전파될 가능성을 감안하고 있다. 이에 대외 안전판을 확충하고 외환건전성 관리체계를 재설계하는 한편 외환시장 안정화 정책도 함께 고도화하기로 했다.
양 교수는 "시장 규모가 커지면 장기적으로는 변동성이 완화될 수 있지만 더 큰 외부 충격에도 노출될 수 있다"며 "정부와 한국은행이 시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와 대응 수단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원화 국제화 로드맵은 외환위기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진 '규제 중심 외환정책'을 '성장 중심 외환정책'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크다.
이형렬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16일 사전브리핑에서 "그동안 외환정책은 외환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원화 국제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적 편익을 포기하는 것이 전제였다. 원화 국제화는 그동안 포기했던 경제적 혜택을 모두 누리겠다는 정책 전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외환정책이 전환된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원화 국제화가 성공하려면 해외 자금 유입 확대라는 성장 효과와 급격한 자본 이동에 따른 환율 변동성이라는 위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외환위기 이후 유지해 온 규제 체계를 푸는 대신 시장의 신뢰와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이재명 정부의 외환정책은 앞으로 성장과 안정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시험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