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6-1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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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정부가 청소년 자살률을 2035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내놓은 첫 범정부 자살예방 대책이 후속 입법과 실행력이라는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청소년 자살을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가 아닌 사회·교육·디지털 환경 전반의 문제로 규정하고 교육부를 중심으로 15개 부처를 묶어 대응에 나선 점은 기존 정책과 차별화되는 대목으로 꼽힌다.
▲ 청소년 자살률 절반 감축 목표를 내건 정부가 범정부 대책을 내놨지만 후속 입법과 현장 안착이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정부와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정부가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놨지만 관련 법률 제·개정과 전문상담인력 확충 등 후속 과제를 둘러싼 이견도 적지 않아 정책의 실효성을 놓고 교육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교육부는 9일 ‘10대 청소년 자살예방 범정부 추진 대책’을 발표하고 2024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8명 수준인 청소년 자살률을 2030년 6.5명, 2035년 4.2명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데이터처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자는 2016년 273명에서 2025년 396명으로 45.1% 급증했다. 정신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은 청소년도 2021년 27만4천 명에서 2025년 43만1천 명으로 57.3%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가 9대 분야별 자살예방 대책의 첫 번째 대상으로 청소년을 선정한 배경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 고민, 학교폭력, 사회적 고립, 온라인 자살유발 정보 등을 청소년 자살의 위험요인으로 지목하며 성장환경 전반에 대한 대응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사회정서교육 확대와 체육·예술교육 강화, 학교폭력 예방주간 신설, 부모교육 확대,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 운영 등을 대책에 포함했다.
정부는 특히 온라인 자살유발 정보와 디지털 환경에 대한 관리 강화를 이번 대책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정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살·자해 유발 정보를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시정 요청도 확대하기로 했다. 청소년 자살사안 보도 금지와 위반 시 벌칙조항 마련도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이는 청소년 자살을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가 아니라 온라인 환경까지 포함한 사회적 위험요인 관리 차원으로 확장한 조치로 해석된다.
교육청을 청소년 자살예방의 핵심 주체로 세운 점도 눈에 띈다.
정부는 현재 경찰·소방에서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로만 공유되는 자살시도자 정보를 앞으로 교육청에도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자살시도 이후 학교 복귀 과정까지 공공이 관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위기 학생에 대한 개입 범위를 넓힌 점도 변화다. 정부는 보호자가 상담이나 치료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학교장이 동의 없이 긴급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가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운영되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이번 대책이 실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입법 과제를 풀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대표발의한 ‘학생 마음건강 증진 및 정서행동지원에 관한 법률안’(학생 마음건강 지원법안) 제정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 가정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학생 마음건강 지원체계를 제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는 학교장이 학생의 정서행동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상담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교육부는 학생상담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상담 내용과 지원 이력을 기록·연계할 수 있도록 하고, 교육청 차원의 학생마음건강지원센터와 학생회복지원기관 설치 근거도 마련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조기 발견·개입 체계의 법적 기반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교육계에서는 학교 역할이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가 교육기관을 넘어 사실상 학생 마음건강 관리와 복지 지원의 중심기관 역할까지 떠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법안은 학생 지원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관련 자료를 목적 외로 활용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이번 자살예방 대책을 놓고 “15개 부처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한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감지·개입·회복 전 과정에서 학교와 교원의 역할과 책임은 크게 늘어났지만 이를 뒷받침할 보호 장치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한 번만 더' 동상. <연합뉴스>
교총은 위기 학생 지도 과정에서 아동학대 신고나 악성 민원에 노출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은 채 교원의 책임만 확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비밀유지 의무 위반 시 형사처벌하도록 한 조항을 두고 “제2의 아동학대처벌법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전교조는 이번 대책이 위기 학생 조기 발견과 정보 연계 강화 등 관리 중심 정책에 집중한 반면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의 배경으로 꼽히는 경쟁 중심 교육체제에 대한 접근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입시 경쟁과 학업 부담 속에서 성장하고 교사와 학부모 역시 경쟁과 불안에 내몰리는 현실이 청소년 자살 증가의 구조적 원인인데도 정부가 원인보다는 결과를 관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계 안에서도 학교 현장의 역할 확대와 교육환경 개선을 놓고 시각차가 나타나고 있다.
안정적 예산 확보 역시 남아 있는 과제다.
교총은 전문상담인력 배치율이 61.0%, 위클래스 구축률이 77.3% 수준에 머무는 상황에서 인력 확충 목표 시점마저 2030년으로 제시돼 현장 부담이 지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이번 청소년 자살예방 대책이 실제 자살률 감소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시스템 구축을 넘어, 교육·복지·보건 체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후속 입법과 안정적 예산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 마음건강 지원법 제정과 관련법 개정 과정에서 교권 보호 장치를 어떻게 보완하고, 학교 현장의 수용성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진짜 승부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우리 청소년의 자살은 청소년 성장 환경 전반을 둘러싼 사회구성원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공동대응해야 할 과제”라며 “정부는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미디어, 언론 등 사회 각계의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청소년 자살 예방과 회복의 기반이 실질적으로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